동지(冬至)는 양력 12월 22일경으로, 24절기 가운데 스물두 번째 절기다. 오늘이 바로 동지다. 대설과 소한 사이에 들어 있으며 우주 태양의 황경(黃經)이 270°일 때이다.
동지는 반드시 음력 11월에 들어있으므로 11월을 동짓달이라 불렀다. 동지는 24절기의 하나로서 일 년 중 밤이 가장 길고 낮이 가장 짧다. 동지 다음 날부터 차츰 밤이 짧아지고 낮이 다시 길어지는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 태양 부활 의미 담은 ‘작은 설’
동국세시기에 의하면 동짓날을 아세(亞歲)라 했다. 동짓날에는 천지신과 조상의 영을 제사하고, 신하의 조하(朝賀)를 받았으며, 군신의 연예를 받기도 하였다. 민간에서는 흔히 ‘작은 설’이라 하였다. 태양의 부활을 뜻하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 설 다음으로 가는 작은설의 대접을 받은 것이다.
그 유풍(儒風)은 오늘날에도 이어져 ‘동지팥죽을 먹어야 진짜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말을 한다. 동짓날에는 동지팥죽 또는 동지두죽(冬至豆粥), 동지시식이라는 오랜 관습이 있다. 팥을 끓여 죽을 만들고 여기에 찹쌀로 단자(團子)를 만들어 넣고 끓인다. 단자는 새알 크기로 만들기 때문에 옹시래미(새알심:鳥卵心)라 부른다. 동짓날에 팥죽을 끓이면 맨 먼저 사당에 올리는데, 그것은 선영에 대한 천신(薦新)의 뜻이 있다. 또한, 팥죽을 쑤어 각 방, 장독, 헛간 등 집안의 여러 곳에 놓았다가 식은 다음에 식구들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마당이나 대문 밖까지 팥죽을 뿌렸다. 동짓날의 팥죽은 계절식의 하나로 신앙적인 뜻을 지니고 있다.
△ 붉은 팥 뿌려 잡귀 쫓아
팥죽에는 잡귀를 쫓아내는 기능이 있었던 것으로 여기고, 여러 곳에 놓고 뿌리는 것은 악귀를 모조리 몰아내기 위한 풍속이다. 또한, 마을에 사람이 죽으면 팥죽을 쑤어 상가(喪家)에 보내는 풍속도 있었다. 붉은 팥은 양색(陽色)이므로 음귀(陰鬼)를 쫓는 데 효과가 있다고 믿었으며, 민속적으로 널리 활용되었다. 경사가 있을 때나 재앙이 있을 때도 팥죽, 팥떡, 팥밥을 하는 것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형초(荊楚)세시기에 의하면 옛날 공공씨(共工氏)의 망나니 아들이 동짓날에 죽어서 역신(疫神)이 되었다고 한다. 그 아들이 평상시에 팥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역신을 쫓기 위하여 동짓날 팥죽을 쑤어 악귀를 쫓았다는 데서 유래된 것이다.
△ 풍년 빌고 다산 비는 의식 거행
예부터 우리 조상들은 동지를 설·한식·단오·추석과 같은 명절로 여겼다. 고려 시대 동짓날은 만물이 회생하는 날이라 하여 고기잡이와 사냥을 금지하였다. 동짓날부터 땅속의 양기가 왕성하게 솟아나 이날을 길조가 있는 날로 알려졌다. 조선 시대에는 조정에서 동짓날 중국에 사신을 보내는데 이런 사절단을 동지사(冬至使)라고 불렀다.
세시기에 의하면 ‘동지헌말’ 이라는 말이 있다. 해가 길어지기 시작하는 동지부터 섣달그믐까지는 며느리들의 일손이 바빠진다. 시댁의 할머니, 어머니, 시누이 등 시집의 기혼녀들에게 버선을 지어 받친다. 이를 동지헌말 또는 풍년을 빌고 다산을 드린다는 뜻의 풍정(豊呈)이라고도 했다. 18세기 실학자 성호 이익(李瀷) 선생은 동지헌말에 대하여, 새 버선을 신고 길어지는 해 그림자를 밟고 살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했다.
고려, 조선 초기의 동짓날에는 생계가 어려운 백성들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기분으로 하루를 즐기는 풍속이 있었다. 또한, 일가친척이나 이웃 간에는 서로 화합하고 어려운 일은 서로 풀어 해결하였다. 오늘날 연말이면 불우이웃돕기를 펼치는 것도 동짓날의 전통이 이어져 내려온 것으로 미풍양속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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