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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가족의 설] 중국서 시집 온 전주 송련화 씨, 수다 떠느라 손보다 입이 더 바빠 "이젠 한국사람 다 됐죠"

"고향에서는 명절 때 한 달동안 인사 다녀, 처음엔 외로웠지만 지금은 복 받았다 생각…전주비전대 입학, 사회복지사 꿈 꿔 행복"

▲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해 지난해 3월 전주비전대학교 아동복지학과에 입학한 송련화씨가 활짝 웃고 있다. 박형민 기자

중국에서 시집 온 송련화씨(34)는 설 명절을 앞두고 지난 2일 전주시 완산구에서 마련한 ‘소외이웃을 위한 설 명절 음식나눔’ 행사에 참여해 열심히 설 음식을 만들었다.

 

이날 행사에는 이주여성 10명을 포함해 완산구민 120여명이 함께 모여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며 동태전 등 다양한 전과 산적을 부쳤다.

 

전주시 효자동의 한 아파트에서 남편 이찬영씨(48), 시어머니 박윤순씨(69), 아들 이선민군(10), 딸 기선양(5)과 함께 살고 있는 련화씨는 “처음에는 한국에 온 것이 낯설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시어머니께서 아주 무서워 보였다”고 운을 뗀 련화씨는 “세월이 지나니까 친정 어머니처럼 지금은 실수를 해도 그냥 웃으면서 넘어가신다”고 말했다.

 

옆에서 버섯을 다듬던 이주여성 메리로즈(35·필리핀)씨와 조리나(34·중국)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음식 준비에 방해가 될까 싶어 멀리서 조용히 지켰봤지만 이들은 수다 보따리를 풀어놓느라 손보다 입이 더 분주해 보였다.

 

잠시 뒤 동태전을 부치다 불 조절을 제대로 못해 반쯤 태운 련화씨는 “시어머니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라며 웃었다.

 

련화씨 가족은 교회를 다니기 때문에 따로 차례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그렇지만 시어머니가 “내가 살아있을 때까지는 차례상 만큼은 차리련다”는 말에 교회에 다니면서도 명절에 차례상은 차리고 있다.

 

순창에 조상 묘가 있어 매 명절 때마다 차례를 지내러 간다는 련화씨는 “한국에서의 명절은 뭔가 조용한 분위기인 것 같아 ‘맛’이 안난다”고 말했다.

 

중국에 있는 련화씨 친정 어머니는 무려 7형제다. 명절 때면 지역별로 인사를 하러 다니는데 족히 한 달은 걸린다. 그때 모이는 친척이 무려 40명이다. 그런 련화씨가 한국에서 보내는 명절에 모인 가족이 채 10명도 안되니 조용한 분위기가 아쉽다는 말이 이해가 갔다.

 

련화씨는 “처음에 한국에서 보낸 명절은 단출해 너무 외로웠다”면서 “그런데 주위 친구들을 봤을 때 가족이 적은 것은 그만큼 명절을 준비하는데 편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지금은 오히려 복을 받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손을 잡고 10시간씩 시외버스를 타고 외가 식구들 집으로 명절을 쇠러 다녔다고 한다. 설날에는 만두를 빚고 추석때는 월병을 만들어 먹은 기억을 더듬으며 군침을 삼켰다.

▲ 전주시 완산구의 ‘소외이웃을 위한 설 명절 음식나눔’행사에 참여해 설 음식을 만들고 있는 송련화씨(왼쪽 앞) ·박형민 기자

음식 준비가 끝난 련화씨에게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는지를 물어봤다.

 

“2004년 겨울이었어요.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 새벽 교회를 가려고 나서는데 흩날리는 눈이 가로등 불빛에 비추는 것을 보면서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만 해도 24살 련화씨는 한국으로 시집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 터이다. 중국 길림성 연길시에 있는 작은 교회를 다니던 련화씨는 목사님의 소개로 그날 남편 찬영씨를 처음 만났다. 그 뒤 자주 얼굴을 보며 정을 쌓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여성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찬영씨는 “련화씨를 만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했다.

 

그때 남편의 첫 인상이 어땠느냐고 묻자 련화씨는 “남편 첫 인상이요? 글쎄요…대머리예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남편에게 미안했는지 련화씨는 이내 “키도 크고 안(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이라 얼굴 색도 어둡지가 않았어요”라며 급하게 수습했다.

 

당시 지병으로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언니는 시집보내고, 달랑 남은 어머니와 어린 동생뿐이었던 련화씨는 빨리 성공을 해서 안정적인 가족을 꾸리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그녀가 찬영씨를 만난 것이다. 이듬해인 2005년 3월 중국 연길에서, 그리고 6월에는 전주에서 각각 결혼식을 올렸다.

 

순창에서 태어났지만 전주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남편 찬영씨는 중국에서 만난 련화씨와 함께 “한국에서 무엇을 해서 먹고 살까” 고민하던 중 편의점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고, 남편이 젊었을 때 부터 모은 돈을 모두 편의점 운영 자금으로 투자했다.

 

근근이 편의점 운영으로 6년을 버텼지만 생각했던 만큼 돈을 벌지 못했고, 적자만 불어나 지난 2012년 편의점 문을 닫았다.

 

이후 남편 찬영씨는 중소기업에 들어가 회사원이 됐고, 련화씨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렇게 1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어느 날 련화씨는 중국에 있는 어머니로 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우리 딸 한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엄마는 우리 딸이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으면 좋겠다.”

 

엄마의 한 마디에 련화씨는 말문이 막혔다. 식당에서 고기 불판을 닦던 그녀는 “젊은 나이에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갈 수는 없다”며 과감히 고무장갑을 벗어 던졌다.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련화씨는 전주시 우아동 전주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찾아갔다. 센터는 다문화가족의 기초 학력 신장 및 진학지도 강화를 위해 결혼이주여성들에게 학력 취득 지원사업을 실시하고 있었다. 주 5회 10개월 과정을 성실히 이수한 련화씨는 당당히 지난 2014년 8월 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증을 받았다.

 

대학에 가서 아동복지학과를 나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나온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에 련화씨는 지난해 3월 전주비전대학교 아동복지학과에 입학했다.

 

“요즘은 자격증 시대라 학교에 다니면서도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이것 저것 많이 배우고 있다”는 련화씨는 종이접기 자격증을 꺼내 보였다. 그녀는 지금은 토요일마다 쿠키 클레이 자격증 준비를 한다고 했다.

 

“혹시 다문화가족이어서 차별받는 것은 없나요?” 실례가 될까봐 하지 못한 말을 조심스럽게 던졌는데 기우였다.

 

“요즘 다문화가족이라고 차별하고 그런 거 없어요. 대신 우리 아이들이 중국어를 못해서 걱정이에요.”

 

련화씨도 이제 한국사람 다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세계 각국의 설 명절

 

- 중국 '춘절' 폭죽 터뜨리며 집안 악귀 쫓아 / 베트남 '뗏' 떡 만들어 먹고 웃어른께 세배

 

중국의 ‘춘절’은 가장 큰 명절로, 음력 정월 초하룻날을 일컫는다. 한국의 설날(음력 1월1일)과 비슷하다. 이 날 밤이 되면 중국인들은 집집마다 가족이 둘러 앉아 만두를 만들며 밤을 지새운다. 아침 해가 솟으면 일제히 폭죽을 터뜨리며 집안에 있는 악귀를 쫓는다.

 

보통 춘절은 며칠씩 계속되고, 지역에 따라서는 보름 이상 계속되는 곳도 있다. 또 집집마다 대문에 춘련(春聯)이라는 글귀를 써서 붙이고, 방 안의 벽에는 잉어를 안고 있는 아기의 그림과 같은 연화(年畵)를 붙이거나 걸어 놓는다. 대문에 ‘복(福)’자(字)를 거꾸로 붙여 놓는 풍습도 있는데, 중국어로 읽으면 ‘복이 들어온다(福到了)’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민속놀이는 사자탈춤(사자무)이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세뱃돈을 주는 풍습도 있다. 관공서를 비롯한 공공기관이나 기업체들의 평균 휴일은 6일이지만, 한 달 동안 가동을 중단하는 기업도 있다.

 

베트남은 음력 1월1일부터 3일까지 새해 첫 날 아침이라는 의미인 ‘뗏(Tet)’으로 지정해 명절을 쇤다. 설날 첫 날 동이 트면 ‘반쯩’이라고 하는 푸른 빛깔의 정사각형 모양의 명절 떡을 만들어 먹고 아이들은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 부모님과 웃어른들께 세배를 드린다.

 

베트남인들은 새해 첫 날 자신의 집을 방문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에 따라 한 해의 운세가 뒤바뀔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이날 남의 집을 방문하는 것을 상당히 조심스럽게 생각한다.

 

둘째 날에는 가까운 일가 친척과 형제들을 방문해 화해와 우정의 손길을 내밀고, 셋째 날에는 스승이나 직장 상사 등의 집을 방문해 새해 축하인사를 한다. 한편 노인들은 새해 첫 날 저승으로 돌아갈 조상을 위한 제사상을 차리고 금색지폐를 불태운다.

 

캄보디아에는 전통적인 설날로 ‘쫄츠남(Chaul Chnam Thmey)’이 있다. 새로운 해(츠남)로, 들어간다(쫄)는 뜻이다. 캄보디아는 세 번에 걸쳐 새해를 보낸다. 첫째는 양력 1월1일, 두 번째 우리와 비슷한 시기의 중국 춘절, 마지막으로 매년 4월14일~4월16일 공휴일인 캄보디아 최대명절 ‘쫄츠남’이다. 이른 아침 사원에서 북을 치는 공식적인 행사로 시작됩니다. 또한 이 날은 많은 캄보디아인들이 새해를 맞아 집을 깨끗이 청소하고 자신의 가정을 지켜 줄 천사를 맞이하기 위하여 풍성한 다과 상을 준비한다. ‘쫄츠남’에는 학교는 20일, 직장은 10일 정도 쉰다.

 

몽골도 우리나라로 치면 설날을 뜻하는 ‘차강사르’가 있다. 차강(Tsagaan)은 흰색(白)을 의미하며, 사르(Sar)는 달(月)을 뜻하는 말로, 차강사르는 백월(白月)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날은 친척이나 지인의 집을 방문해 안부를 물으며, 집주인이 준비한 몽골식 만두 보즈(Buuz)를 나눠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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