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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에 대하여

▲ 홍용웅 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낭만(浪漫)이라는 말은 매우 빈번하게 쓰이지만, 그 뜻을 정확히 아는 이는 드물다. 낭만은 어원인 로망(roman)의 일본식 발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물결 랑/흩어질 만, 두 글자의 조합이 주는 이미지가 절묘하다. 사전적으로는 실현성이 적고 매우 정서적, 이상적으로 사물을 파악하는 심리상태라 풀이된다. ‘출세는 남성의 로망이다.’처럼 실생활에서 자주 오용되기도 한다. 로맨스, 로맨틱도 여기서 파생됐다.

 

낭만에는 일탈의 뉘앙스가 있다. 아울러 복고적 풍미도 느껴지는데, 아널드 하우저는 그의 명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에서 낭만주의를 ‘과거로의 도피’로 보았다. 고전주의적 질서와 계몽주의적 합리성에 반항하면서 인간 감성의 해방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래선지 낭만이라는 말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추억, 비장감, 한 줌의 퇴폐가 융해돼있다. 거기에 중년의 허탈과 고독, 회한이 독주(毒酒)처럼 더해진다. 혈기방장 청년과 무기력한 노년 사이에 ‘낀 세대’지만, 아직은 미래를 방기할 순 없다. 나름의 꿈과 용기가, 아니면 오기라도 있다.

 

세월과 함께 낭만의 시공들이 사라져 가면서 중년들은 몸도 마음도 붙일 곳이 없다. 현대의 ‘스마트’한 의사소통은 감정의 일탈을 용서치 않는다. 낭만의 노정은, 그 비경제성 때문에도, 바보짓으로 치부된다. 모든 걸 확실히, 그리고 깔끔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래서 낭만은 신기루고, 감정의 사치로 여겨진다. 기교, 외모, 스펙만이 핵심이다.

 

너나없이 대박 나길 꿈꾸는 사회에서 낭만은 거추장스러운 혹과 같다. 그러나 이처럼 현기증 나는 효율 지상의 세상이지만, 우리고장 전북에는 욕쟁이 할머니도 계시고, 포장집 잔술도 있고, 음치도 노래할 수 있는 로맨틱한 공간들이 살아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중년층의 회귀본능을 어루만지는 어머니 품 같은 곳이 되면 정말 좋겠다. 듣자하니 한옥마을에 천만 객이 운집하고, 청년층이 주 방문객이라 한다. 기쁜 소식이다. 그러나 청년과 중년,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없을까? 청년도 머잖아 중년이 되는 게 자연의 섭리인데 말이다.

 

전북도의 투자리스트에 ‘낭만’이란 두 글자를 더하면 어떨까? 오늘도 잃어버린 과거를 찾아 헤매는 수많은 중년들을 낭만의 고향 전북으로 유혹해 보자. 동창회, 은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발 ‘낭만열차/낭만버스’는 추억에 목마른 이들로 만원이 된다. 한옥마을, 근대화 거리에서 마주치는 유년시절, 광한루에서 되찾은 첫사랑의 기억, 백제 유적에서 느끼는 허무와 각성… 그리하여 무한경쟁의 정글에서 ‘가오’를 상실한 중년들이 전북에서만은 삶의 주인이 된다.

 

춘천은 ‘청춘도시’로 목하 성업 중이다. 닭갈비 외에 별난 것 없는 이곳에 ‘청춘열차’가 싣고 온 변화는 심대하다. 질적, 양적으로 우수하고 다양한 문화를 지닌 전북이 로맨스 마케팅을 감행해 본다면 장차 멋진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퇴근 후 정붙일 데 없는 중년의 일인으로 가끔 이런 상상을 해보곤 한다. 한낱 공상, 환상, 망상일 뿐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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