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재단, 2년동안 후손·문헌 등 조사 결과 / 일본서 환수된 '갑오군정실기' 결정적 역할
하층민이 핍박 받는 사회적 모순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1894년 그 치열한 현장에서 변화를 목 놓아 외치면서도 잊혔던 사람들이 있었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김대곤, 이하 기념재단)은 지난 2년간 조사한 결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269명을 추가 확인했다고 9일 밝혔다.
기념재단이 지난 2014년부터 이듬해까지 기존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후손이나 지인, 기록으로 남은 고문헌을 조사하면서 이들의 이름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다.
이번 조사 결과에는 전북 남원 출신으로 백범 김구와 훗날 독립운동을 함께 하기도 했던 김형진, 전봉준과 함께 교수형을 당했던 성두환의 부친 성종연과 아들 성병식 등이 포함됐다.
참여자의 활동 지역별로는 충청 122명, 경기 58명, 전라 32명, 강원 22명, 경상 20명, 황해 15명 등으로 전국적인 분포를 보였다. 그 동안 참여자 수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던 지역 인물도 상당수 발견됐다는 게 기념재단 관계자의 설명이다.
특히 학계 전문가가 참여해 문헌조사가 진행된 <갑오군정실기> (甲午軍政實記, 총 10권)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갑오군정실기> 는 수많은 농민군이 완주 삼례지역에 재집결 했던 동학농민혁명 2차 봉기 당시, 조선정부가 진압을 위해 편성한 관군 지휘부 ‘양호도순무영(兩湖都巡撫營)’이 1894년 9월부터 12월까지 각 급 기관과 주고받았던 문서가 담긴 책이다. 문화재청이 2011년 일본 궁내청으로부터 환수한 조선도서 1000여점에 포함돼 있었다. 갑오군정실기> 갑오군정실기>
이로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총 3962명으로 확인됐지만 이 가운데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따라 등록된 사람은 3644명뿐이다. 2009년 참여자 등록 심의위원회가 활동을 종료하며 이번에 조사된 269명을 비롯한 318명은 등록대상자에 머무는 상태다.
이병규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연구조사부장은 “많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가 새롭게 확인된 만큼 이들의 등록을 위한 특별법 개정이 힘을 얻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기념재단은 10월 <갑오군정실기> 를 다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당시 농민군과 진압군의 활동을 조명하는 한편 동학특별법 개정을 지속해서 추진할 계획이다. 갑오군정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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