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피하지만 며칠째 아무것도 못 먹어서 남는 밥이랑 김치가 있으면 저희 집 문 좀 두들겨주세요.’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가 2011년 사망하기 전 이웃집 대문에 남긴 쪽지가 세상에 알려진 후 예술인의 복지문제가 공론화 되면서 일명 ‘최고은법’인 예술인복지법이 제정됐다. 법 시행과 함께 한국예술인복지재단을 출범시켜 고용보험·국민연금 지원, 창작준비금 지원, 예술인 파견 지원 등의 복지사업이 펼쳐지고 있으나 예술인들의 궁핍한 생활은 달리 개선되지 않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최근 발표한 ‘2015년 예술인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예술인 개인이 예술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연 수입은 평균 1255만원으로, 예술활동만으로는 여전히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에서 전북을 포함해 전라권 예술인들이 더 궁핍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라권 예술인들이 예술 활동으로 번 평균수입은 826만원으로, 전국 평균에 훨씬 못 미치면서 전국적으로 가장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예술활동 관련 수입이 없는 전라권 예술인들의 비율(59%)도 수도권과 경상권, 충청권에 비해 월등하게 높게 나타났다. 경제적 궁핍은 예술활동의 위축으로 이어졌다. 전라권 예술인들의 연 평균 작품 발표량이 약 5회로, 전국 평균 6.1회보다 적다. 외국 활동 경험도 전국 평균 20.1%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9%에 불과했다.
예술인들의 복지상황은 지역의 경제력과 맞물려 있다. 전라권 예술인들의 열악한 형편은 곧 지역의 서글픈 경제적 현실이기도 하다. 재정형편이나 경제적 상황을 무시하고 예술인만 지원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예술인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로 미루고 그대로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예술인들이 먹고살기 위해 하나 둘씩 지역을 떠날 경우 지역의 문화예술활동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교육부가 대학평가의 잣대로 취업률을 들이대면서 이미 도내 여러 대학에서 예술 관련 학과가 통폐합됐다. 예술 관련 학과를 겨우 유지하는 대학들도 여차하면 가장 먼저 예술학과에 손을 댈 태세다. 전문 예술인 양성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예술 전공자들이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될 경우 ‘예향 전북’의 간판도 내려질 것이다. 문화자산은 보이지 않는 지역의 힘이다. 전북은 여러 장르에서 전국의 중심에 서왔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다. 그런 자산과 자부심을 지킬 수 있게 문화예술과 예술인에 대한 지역사회의 애정과 지원이 더욱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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