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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책박물관 박대헌 관장 "책으로 자생하는 마을…주민과 함께 삼례를 책으로 덮고 싶어"

▲ 완주책박물관 박대헌 관장이 인터뷰를 마친 뒤 수북이 쌓여있는 헌책들 사이에서 책 한권을 보고 있다. 이 책들은 삼례문화예술촌 바로 옆에 조성되고 있는 책마을문화센터에 들어갈 고서져호산방’에 놓일 책들이다. 안봉주 기자

완주군 옛 삼례역 앞, 7개동의 양곡창고가 변신한 것은 3년 전이다.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를 온몸으로 지키고 있던 쌀 수탈의 현장 양곡창고의 변신은 놀라웠다. 공간의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건물의 외형을 입고 들어선 문화공간. 비주얼미디어아트미술관, 디자인뮤지엄, 김상림목공소, 책공방북아트센터, 책박물관, 문화카페까지 6개의 공간은 낡은 건물의 가치를 새롭게 살려낸 모범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은 관객들을 불러들이는 곳, 책박물관이 있다. 완주책박물관이라고 이름붙인 이곳은 옛 책의 가치를 새롭게 일깨워주는 귀한 공간이다. 사실 책박물관은 수년전 영월책박물관으로 이미 이름을 알렸다. 시골마을의 폐교를 활용해 만든 책박물관은 영월을 박물관도시로 성장시키는 동력이 됐다. 그러나 우여곡절을 겪고 영월책박물관은 문을 닫았다.

 

2013년 완주에 책박물관이 다시 문을 열었다. 책박물관 주인인 박대헌 관장(63)의 새로운 도전이 이곳에서 시작됐다. 그는 고서대학을 열고 의미 있는 책기획전을 이어가면서 관객들의 고서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박관장을 만났다. 봄날인 듯 봄날이 아닌 듯, 찬바람이 부는 봄날이었다. 두툼한 자료집을 들고 나온 그는 허름한 창고 안으로 안내했다. 그 안 풍경이 놀라웠다. 셀 수도 없이 수많은 헌책이 거기 있었다. 10만권은 족히 되는 양이라고 했다. 이 책들은 삼례문화예술촌 바로 옆에 조성되고 있는 책마을문화센터에 들어갈 고서점 호산방에 놓일 책들이었다.

 

오는 4월 완공되는 삼례 책마을문화센터는 박관장의 제안으로 완주군이 조성하는 공간이다. 책마을 기획의 중심에 있는 그는 모든 열정을 이곳에 쏟고 있는 듯 했다. 연고도 없는 삼례에 들어와 오랜 꿈을 희망으로 실현해가는 그의 목표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삼례를 책으로 덮고 싶어요. 책으로 자생하는 그런 마을. 삼례가 그런 마을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상상만 해도 행복한 풍경이 힘을 내게 합니다.”

 

그에게 책이 존재 이유이고 삶 그 자체라는 것을 이해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책박물관이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것 같습니다. 좋은 기획이 이어지면서 삼례예술촌을 알리는데도 좋은 역할을 하고 있고요. 삼례로 오신지 3년째인가요.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2013년 6월에 문을 열었으니까요. 책박물관의 기능을 살리려고 노력은 하는데, 여건상 아쉬움이 많습니다. 지금 진행하고 있는 책마을이 문을 열면 서로 보완하면서 좋은 공간으로서 역할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하고요.”

 

-삼례문화예술촌 앞에 조성되는 책마을이 거의 완공단계에 있던데요. 준비는 잘되어가고 있습니까.

 

“공식적인 이름은 삼례책마을문화센터입니다. 4월에 개관 예정인데, 전체적으로 진행은 잘되어가고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헌책도 정리되어가고 있는 중이고요. 주민들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것이 과제인데, 주민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어서 적응해가는 과정에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삼례예술촌에 들어오자마자 고서대학을 열었어요. 고서와 헌책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프로그램을 운영했죠.“

 

-책마을의 콘셉트가 헌책방이라고 들었습니다.

 

“헌책방이 중심이 되고 다양한 문화시설이 들어섭니다. 한국학아카이브도 구축되고요.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건물 한 동은 온전히 헌책방들로 구성됩니다.”

 

-단순히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 기능보다는 실제 헌책을 사고파는 책방으로서의 기능이 강조되겠군요.

 

“사고파는 행위가 이루어져야 책마을이 활성화될 수 있으니까요. 필요한 책은 사고, 자기가 갖고 있는 책을 누군가 읽을 수 있도록 내놓는 문화적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간은 생명력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문화적 토대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확장시켜 가느냐가 과제겠지요.”

 

-좋은 기획자와 행정이 만나 좋은 사업을 만들어낸다해도 주민들의 외면으로 실패하는 사례를 많이 보아왔습니다. 삼례책마을은 어떤가요.

 

“삼례책마을도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과정이 있습니다. 주민들이 새로운 것 낯선 것에 관심을 갖게 하고, 과정을 공유하면서 자연스럽게 주인이 될 수 있게 하는,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민들의 일상과 삶의 바탕이 제대로 결합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죠.”

 

-삼례책마을문화센터의 구체적인 구성이 궁금합니다.

 

“건물 4동이 조성됩니다. 그 중 북하우스가 중심이죠. 그 공간에 제가 운영해온 고서점 ‘호산방’이 들어섭니다. 여러 헌책방도 함께 들어섭니다. 이 공간은 모두 주민들의 직접적인 참여가 가능한 곳입니다. 누구나 책을 갖고 참여할 수 있어요. 코너를 만들어주고 자신이 갖고 있는 헌책들을 내놓게 되죠. 구체적인 규정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헌책방 코너를 한데 묶어 공동 판매하는 형식으로 묶어 운영해볼 계획입니다. 책방운영의 경험이 없는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죠. 호산방 운영의 30여년 노하우를 이곳에서 다시 풀어가려고 합니다.”

 

-주민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되겠군요. 기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호산방 이야기를 좀 듣고 싶습니다. 호산방이 문을 닫은 지난해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작년 9월에 서울 창덕궁 앞에 있던 책방 간판을 내렸으니 호산방을 시작한지 꼭 32년만이군요. 고서점 운영의 한계를 맞은 것이죠. 시대적 한계니 어쩔 수 없지만 고서에 대한 가치를 모르고 대접하지 않는 문화적 환경이 안타깝습니다.”

 

-호산방은 고서점계의 혁신을 이끌어온 서점으로 정평이 나있습니다. 박관장님의 안목과 실력이 가져온 결과겠지요. 고서점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습니까.

 

“헌책을 좋아해 수집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서점을 열게 되었어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서에 빠져 책에 둘러싸여 사는 일상을 늘 꿈꾸었거든요.”

 

-고서와의 인연은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까.

 

“국어학자 강기진 교수님이 고등학교 때 국어를 가르치셨어요. 수업시간에 수주 변영로 선생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명정 사십년〉이란 책을 꼭 구해서 읽어보라고 하시는 겁니다. 술에 읽힌 일화를 쓴 책인데 쉽게 구할 수 없을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이셨죠. 곧장 청계천 헌책방으로 갔어요. 그때 처음으로 청계천 헌책방을 가봤는데, 두 시간을 뒤져도 없는 거예요. 그 뒤로 매주 찾아갔지만 번번이 허탕 쳤어요. 몇 년 후에서야 그 책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헌책방을 뒤지고 다니다보니 자연스럽게 다른 헌책에 눈이 가더라고요. 그때부터 고서를 사기 시작했죠.”

 

-말씀을 듣다보니 책 장정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고서들을 보면서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탄복한 책이 많습니다. 그래서 고등학생으로서는 버겁지만 용돈을 털어 비싼 책을 사기도 했어요.”

 

-책을 만나는 방식에 따라 책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이상하게 저는 책의 내용보다 겉이 좋았어요. 내용은 언젠가는 보게 되거든요. 필요한때 찾아 읽으면 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매스컴의 서평이나 책소개를 보고 책을 사죠. 그리고는 책을 못 읽으면 불안해합니다. 스트레스까지 받으면서 왜 책을 사고 읽는지……. 저는 책을 많이 삽니다. 언젠가는 필요할 것 같아서 신간도 사는데, 읽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아요.(웃음)”

 

-산 책을 다 읽지 않는다는 말씀이 큰 위로가 됩니다.(웃음) 고서와 헌책은 다른 것인가요.

 

“물론이죠. 국어사전에는 고서를 ‘옛 책, 고서적” 또는 ‘헌책’이라고 정의해놓았지만 그 의미는 좀 다릅니다. 저는 굳이 고서(옛책)와 헌책을 구분한다면 비교적 가치가 있으면서 오래된 책을 고서라 할 수 있고, 가치가 덜하면서 오래되지 않은 책은 헌책이라고 말합니다. 실제로 한국고서연구회는 고서를 ‘1959년 이전에 출판된 책’이라고 규정하고 있죠. 그러나 저는 고서를 구분할 때 육이오전쟁이 끝난 1953년을 기점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육이오 전쟁으로 수많은 책이 소실되었고, 전쟁 중에는 출판활동에 많은 제약이 따라 출판된 책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이죠.”

 

-가치로 본다면 모든 오래된 책이 고서라고 할 수는 없겠군요.

 

“사실 고서가 되려면 시간적으로는 30년에서 50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오래되었다고 해도 고서로서 가치를 발휘하는 책은 많지 않아요. 출판하는 분들에게 종종 ‘좋은 책은 30년 50년 후에 고서점에서 팔리는 책’이라고 말합니다. 좋은 책을 기획하는 바탕으로 삼으라는 이야기죠.”

 

-호산방은 언제 어떻게 문을 열었습니까.

 

“20대를 고서와 고미술 공부로 보내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고서점이었어요. 1983년 장안평 고미술상가에 고서점을 열었죠. 막상 가게를 열긴했는데 문제가 있었어요. 고서화 몇 점에 그동안 모아둔 고서가 전부였거든요. 고서를 사모으기 시작했죠. 그때까지 사둔 고서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 대부분이 가치 있는 책들이어서 한권을 팔아 두 권을 샀죠. 그리고 다시 두 권을 팔아 네 권을 사는 방식으로 사업을 꾸려갔어요.”

 

-한두 권씩 사모은 고서가 바탕이 되어 서점을 살렸군요.

 

“그런 셈입니다. 제가 관심을 가졌던 분야가 옛사람들의 필사본과 간찰, 개화기와 일제강점기 때의 역사 문학 관련 양장본 책이었거든요. 이 책들 덕분에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몇 년 지나지 않아 안정을 찾았어요.”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겠지만 호산방은 단연 고서점 명가로 꼽혔었습니다. 그만큼 호산방을 찾는 단골 고객이 많았다는 증거인데요.

 

“단골 고객들과의 교유가 호산방을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고서점은 신뢰와 소통이 바탕입니다. 서점 주인은 그만큼 고서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해요. 저는 일찍부터 고서에 눈을 뜬 덕분에 다행히 고서점 주인으로서 역할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어요. 탄탄하게 다져진 교우관계가 오늘의 호산방과 저를 있게 한 셈입니다.”

 

-2000년대 초반, 영월 폐교에 책박물관을 만들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영월책박물관은 피폐해가는 농어촌 마을에 문화의 힘이 무엇인가를 알려주는 통로였어요. 그래서 영월책박물관이 문을 닫았을 때 안타까웠습니다. 덕분에 삼례에 책박물관이 들어서게 되었지만요.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영월은 오랜 꿈이던 책박물관을 실현하는 터전이었어요. 1998년 폐교된 학교를 임대해서 가족들이 아예 다 이사를 했습니다. 이듬해 책박물관을 열었습니다. 영월에 들어간 것은 사실 책박물관 뿐 아니라 책마을을 만들고 싶어 선택한 곳이었어요. ‘박물관고을사업’을 군에 제안해 함께 중앙정부에 기획안을 올렸죠. 다행히 선정되어 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덕분에 지금 영월에는 스무 개가 넘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런데 추진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신뢰가 없어지니 더 이상 견디기 힘들더군요. 개인적으로는 큰 상처를 입었죠. 그래도 이겨내야 했습니다. 호산방 역사가 있었으니까요. 10년 만에 서울로 다시 나왔지요. 프레스센터에 서점을 낸 것이 그 직후입니다.”

 

-삼례책박물관과 책마을에 관장님이 더 큰 열정과 의지를 갖게 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 완주군에서 저를 찾아왔을 때는 자치단체장의 의지가 없으면 100프로 실패한다고 말했어요. 당시 여러 자치단체가 저를 찾아왔거든요. 그 대부분이 접근하는 방식과 지향이 미덥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완주는 달랐어요. 특히 완주군청 안에 있는 공무원 독서모임에 호감이 갔습니다. 완주와의 인연이 시작된 것이죠.”

 

-책박물관을 정착시키고 책마을을 추진하는 과정에서도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다시 책마을 이야기로 돌아가게 되는데, 헌책방으로 도시를 살려낸 사례가 적지 않으니 기대도 큽니다만 헌책방 거점으로 자리 잡기까지 과제가 많을 것 같습니다.

 

“물론입니다. 좋은 기획이 더해지지 않으면 공간의 생명력을 지켜갈 수 없게 됩니다. 헌책방이 중심이 되는 책마을을 제대로 갖추기 위해 호산방의 10만권 소장 서적으로 이곳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려고 합니다. 희귀본 등 보물급 고서들의 판매가 이루어질 겁니다. 다양한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어요. 세계고서점들이 참여하는 국제북페어 개최도 중요한 사업이죠. 정병규북디자인 학교도 유치합니다. 시간을 갖고 지켜보아주시면 꼭 좋은 결실이 있을 겁니다.”

 

-호산방에서 만들어낸 책들도 화제입니다.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돋보이는 책들이던데요.

 

“몇 권 만들어내지는 않았지만 호산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처음 내놓은 책이 〈서양인이 본 조선〉이라는 책인데, 상하 두 권에 150만원 정가를 붙였어요. 다들 이해하기 어렵다고들 했죠. 물론 몇 권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팔리겠다는 생각은 애초부터 하지 않았어요. 그 책은 영월로 들어가면서 박물관용으로 작업한 책입니다. 내공이 없어 보이면 안 될 것 같아서요.(웃음) 다행히 하버드나 유명 박물관과 미술관 등 국내보다 외국에 많이 팔렸습니다. 출판기념회 대신 전시회를 했는데 지금까지도 책 전시로는 회자되고 있는 전시가 되었습니다.”

 

박관장의 고서를 향한 애정의 깊이는 헤아리기 어려웠다. 단호하고 확신에 찬 그의 말들은 신념이 되어 옛 책과 옛 책 사이를 건너다니는 듯 했다. 고서점 운영 30여년. 그의 일상은 여전히 그리고 온전히 옛 책과 함께 놓여있다.

 

● [박대헌 관장은] 영월 이어 완주에 책마을 조성, 국내 대표 고서전문가

박대헌 관장의 고향은 서울이다. 고서점 ‘호산방’을 운영하면서 우리나라 고서점의 역사를 새롭게 써온 그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고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독학으로 고서와 고미술을 공부했다. 국어시간에 선생님이 들려준 수주 변영로 선생의 술이야기에 빠진 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명정사십년〉을 구하기 위해 청계천 헌책방을 처음 찾았다. 고서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청소년기에는 도자기에 관심이 많아 도예가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그는 20대 중요한 시기를 온전히 도자기에 바쳤지만 정작 작가가 되진 못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중앙도서관 서울의 고서점을 순례하는 일이 가장 큰 즐거움이었던 그는 1983년, 고서점 ‘호산방’을 열었다. 해방 이전 문학책에 특별한 관심이 있었던 그는 고서점을 연 이후 옛 사람들의 간찰과 필사본에 주목했다. 이 책들의 가치를 가려내기 위해 한적과 간찰을 공부했다. 남다른 안목과 지식을 얻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의 내공을 인정하고 신뢰했으며 교유했다. 동국대 정보산업대학원에 신문방송대학에 들어가 출판 잡지를 전공하기도 했다.

고서점으로 우뚝 선 호산방이 번창하기 시작했을 때 그는 오랜 꿈이었던 책박물관과 책마을 조성 실현에 나섰다. 강원도 영월의 폐교를 만났다. 1999년 그곳에 책박물관을 열었다. 2000년대 초반, 폐교를 활용한 책박물관은 전국적인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10년 만에 그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자치단체와의 갈등은 그에게 큰 상처를 안겼다. 3-4년 호산방 운영에 전념했으나 많은 자치단체들이 그를 찾았다. 그중 완주군이 있었다. 2013년 완주군 삼례읍에 책박물관을 이전해 다시 문을 열었다. 책마을을 조성할 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완주로 끌었다. 박물관을 열자마자 그는 고서대학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외로운 싸움이었지만 신념에 찬 그의 도전은 자치단체를 설득시켰다. 완주군이 조성하는 삼례책마을문화센터는 그가 기획하고 제안한 결실이었다.

 

삼례 책마을은 헌책방이 중심이 되는 공간. 고서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그의 꿈은 현실이 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한 〈서양인이 본 조선〉 〈우리책의 장정과 장정가들〉을 펴내 화제를 모았으며 고서와 함께 한 25년을 세월을 정리한 〈고서이야기〉와 〈한국 북디자인 100년〉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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