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 발원지 강원 태백 황지서 경북 봉화 석포역까지 뚜벅뚜벅 / 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강은 지형도에서 가만히 보면 국토의 핏줄이다. 국가하천은 대동맥이고, 지방하천과 소하천은 대동맥에 연결된 실핏줄 같다. 국토를 맥박이 고동치는 생명체라고 했을 때, 강은 그 생명을 살찌우는 핏줄이다.
낙동강은 ‘가락의 동쪽’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기서 가락은 상주다. 강은 국가의 관리 편의에 따라 국가하천과 지방하천, 소하천으로 나누는데 낙동강은 크게 지방하천 황지천, 지방하천 낙동강, 국가하천 낙동강을 통틀어 부르는 말이다.
낙동강의 길이는 어떤 기준으로 보는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국토부는 ‘하천일람’을 통해 매번 하천의 정확한 정보를 발표한다.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최근 자료에 따르면 낙동강의 유로연장은 510.36㎞(1275. 9리). 황지에 새겨진 낙동강 1300리라는 단어는 여기에서 비롯한 것이다. 총 하천연장(하천법에 따른 하천별 구간의 합)으로 계산하면 황지천(27. 80㎞)과 지방하천 낙동강(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안동시 도산면 토계삼각점까지 86. 80㎞) 국가하천 낙동강(안동 도산면~부산 을숙도 하굿둑 외곽선까지 382. 97㎞)으로 총 길이는 497. 57㎞로 조금 짧아진다.
낙동강은 강원도 태백시 함백산(1537m) 아래 황지못에서 발원하여 반변천, 내성천, 영강 등의 지류를 받아 덩치를 키운 뒤 상주 남쪽 위천과 선산 감천, 대구 금호강, 남지 남강을 합친 뒤 흐름을 동쪽으로 바꾼다. 삼랑진에서 밀양강을 합치고 을숙도를 지나 남해로 흘러 들어간다.
낙동강 1300리 에코트레일 트레킹에 함께 걸으며 생태 자문 위원으로 참여하는 낙동강하구 기수생태계 복원협의회 최대현 사무국장은 “낙동강은 유역면적이 2만 3817㎢로 남한 면적의 25. 9%를 살리는 생명줄”이라며 “강원도 태백시와 경북 안동시, 대구광역시, 경남 밀양시, 양산시, 부산광역시 등 54개 시·군·구 1200만 명의 삶의 터전일 뿐만 아니라 재두루미와 수달 등 천연기념물과 각종 동식물을 기르는 어머니다”고 말했다.
△검은 내 하얀 마음
도심 한가운데 황지가 있다. 굴뚝같은 지하 수구에서 물이 솟는다. 태백시 손정식 문화관광 해설사가 황지의 속은 깊이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해발 680m에서 물이 솟는데 수온은 추우나 더우나 섭씨 12도 정도라고 했다. 물길은 이내 복개 수로로 사라졌다. 태백시는 2018년까지 여기서 황지천 구간을 걷어내 복원한다고 한다. ‘낙동강 1300리 예서 시작되다’란 비석 앞에 부산서 가져간 금정산막걸리를 한 잔 올렸다.
비가 내려 그런지 황지천의 물은 콸콸 흘렀다. 물색은 짙은 회색. 한때 석탄을 많이 캐낼 때는 짙은 먹빛이었다고 한다. 물색은 옅어졌지만, 여전히 검었다. 태백문화원에서 근무했던 안호진 씨는 태백은 석탄산업 합리화 이후 인구도 줄고, 경기도 많이 위축되었다고 했다. 안 씨가 자작나무 수액을 권했다. 고로쇠 수액보다 맑고 맛은 담백했다.
강물은 늘 아래로 흐른다. 산길보다 분명 걷기가 수월할 것으로 생각하니 미소가 나왔다. 태백시는 황지에서 구문소까지 ‘웰빙 로드’로 해 놓았다. 막상 걸어 보니 좁은 인도에 가로수까지 심어 썩 쾌적한 것은 아니었다. 태백체육관 앞에서 길이 끊겨 잠시 당황했는데 왼쪽 황지천 다리를 건너가면 되었다. 고원 도시 태백은 이제 막 봄이 시작됐다. 아직 잎을 다 못 틔운 버들강아지가 냇가에서 봄기운을 더 기다리며 목을 빼고 하늘거렸다. 회색 낡은 건물에 ‘한국진폐협회’라는 간판이 달려 있다. 잔기침이 나왔다. 60~80년대 전국의 안방을 따뜻하게 하던 연탄은 탄광 노동자에게 돈과 병을 함께 안겨 주었다. 연탄보일러의 따뜻함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어릴 적엔 몰랐다.
△탄층에 새겨진 현대사
장성여고 앞에서 큰길을 버리고 옛 도로로 걷는다. 비탈진 절벽에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가 사이좋게 피어 있다. 안내판이 있어 들여다보니 오래전 지구의 속살인 암석과 지질을 설명해 놓은 것이다. 석포까지 이어지는 낙동강 절벽 곳곳에 이런 안내판이 있다.
철로 아래를 지난다. 때마침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지난다. 한때 개도 지폐를 물고 다녔다는 장성에는 단 한 곳의 탄광만 남았다. 신촌 마을 인근에 거대한 수직갱도 철골구조물을 갖춘 대한석탄공사 2수갱이 그곳이다.
물길이 심하게 굽이치는 곳에 태백 장성 이중교가 아직 있다. 위는 철로이고 아래는 차량과 사람이 다녔다. 태백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인데 근대화의 상징적 존재다. 지금은 새로운 다리가 하나 더 생겨 삼중교다.
장성에 있는 태백경찰서에도 오래된 건축물이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시멘트 망루이다. 진폐 환자 치료 지정 병원으로 유명했던 장성 중앙병원은 현재 근로복지공단 태백병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대한석탄공사 장성광업소 정문에 해고된 노동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80년대 유행했던 노동가를 아직도 부르고 있어 애잔했다. 학도병을 배출한 태백중학교를 지나 옛 도로를 따라 걷는데 레미콘 공장 벽에 구호가 선명하다. ‘부지런해야 잘 산다’.
도로이름이 독특했다. ‘비와야절벽로’ 실제로 그 마을엔 비가 와야 물이 떨어지는 절벽이 있었다. 다행히 오전 내내 비가 와서 비와야폭포(연화폭포)를 볼 수 있었다.
△경계 없는 도계를 넘다
메밀뜰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화석이 전시된 태백고생대자연사박물관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 야외에 전시된 삼엽충과 암모나이트 화석을 보았다.
박물관 아래에 구문소가 있다. ‘물은 산을 건너지 못하고 산은 물을 가른다’는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 어긋난 곳. 달걀로 바위를 깰 수 있다는 자연의 의지를 보여주는 곳. 바위를 뚫은 물의 힘에 숙연해지는 곳이 구문소다. S자로 흐르던 물줄기가 수만 년 동안 구문소 바위 절벽을 맨몸으로 부딪쳐 마침내 물길을 낸 것이다.
사시랭이 마을에서 통리에서 내려온 물길이 보태져 황지천이 더 늠름해졌다. 동점역은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인지 출입구를 폐쇄했다. 동점역에서 하루를 마무리하고 다음 날 아침 다시 길을 걷는다. 동점역에서 석포까지는 보행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좁은 길이라 주의해서 걷는다. 빨리 달리는 트럭에 바짝 긴장하며 드디어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도계에 다다랐다.
‘하늘이 내린 땅. 살아 숨 쉬는 땅 강원도’와 이별하고 ‘전통과 문화 자연이 함께 하는 경상북도’로 들어섰다. 물은 아는지 모르는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쉽게 아래로 흘렀다. 육송정 삼거리에서 석포까지 도상 거리는 3㎞. 아침 햇살을 받은 강은 몽환적인 안개를 뿜어냈다. 1구간 종착지인 석포역에 도착하니 목련이 활짝 피어 반겨주었다. 27. 5㎞를 걸었다.
문의: 황계복 산행대장 010-3887-4155. 부산일보 라이프부 051-461-4094.
부산일보=글 사진 이재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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