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선비는 자신의 인격을 알고, 존중해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
송하진 전북도지사는 지난해 6월 11일 삼성의 새만금 투자와 관련한 물음에 이같이 답했다. 선비는 ‘삼성’이고, 존중해 주는 사람은 ‘전북도민’이었다. 이 말은 삼성의 진위를 의심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기다린다는 뜻을 내포했다. 그러나 5년을 기다린 전북도민에게 남은 것은 ‘투자 철회’라는 단 두 마디뿐이다.
삼성의 새만금 투자 약속은 일반적인 투자협약(MOU)과는 의미가 다르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본사의 전북 이전 무산에 따른 정치적인 결과물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애초 국토해양부는 LH 본사를 전북·경남혁신도시에 분산 배치하기로 했다. 토지공사는 전북혁신도시, 주택공사는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2011년 이명박 정권 시절, LH 본사에 대한 경남 진주 일괄 이전이 결정됐다. 지역 민심은 들끓었다. 민주당은 LH 분산 배치를 당론으로 확정하고, 전북도는 삭발 투쟁까지 벌였다. LH 본사의 전북혁신도시 이전 무산과 맞물려 삼성의 새만금 투자 계획이 발표됐다. 한마디로 민심 달래기용 이벤트였던 셈이다.
2011년 4월 27일 국무총리실에서 임채민 국무총리실장과 김순택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 김재수 농림수산식품부 1차관, 김정관 지식경제부 에너지자원실장, 김완주 전북도지사 등 5명은 ‘새만금 사업 투자 및 협력을 위한 MOU’를 체결했다.
2021년부터 2040년까지 새만금 신재생에너지 2단계 예정부지(11.5㎢)에 풍력발전기·태양전지 등을 포함한 ‘그린에너지 종합산업단지’를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총 투자액은 23조원에 달했다. 전북도는 삼성의 새만금 투자로 5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창출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태양광산업을 포함해 5대 신수종사업을 추진한 신사업추진단이 2013년 해체되고, 구체적인 새만금 투자 계획과 일정이 마련되지 않으면서 투자 진위 논란이 일었다.
이후 매년 전북도의회나 국정감사에서는 삼성의 새만금 투자 진정성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를 냈다. 그때마다 전북도는 ‘시기가 도래하면 그대로 (투자)할 것’이라는 삼성의 답변만 전달했다. 지난해에는 5년간 새만금개발청과 삼성이 면담한 횟수가 단 3차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지적되기도 했다.
전북도는 올해 초 삼성 측에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대체할 산업으로 바이오식품·뷰티·화학 등 바이오 분야 투자를 제안했다. 삼성의 새만금 투자 약속이 유효하다는 판단 아래, 투자 방향(분야)에 대한 전환 가능성을 열어 둔 셈이다. 또 지난 3월에는 삼성에 공문을 보내 새만금 투자 MOU에 대한 이행 여부를 타진했다. 그러나 삼성 측은 ‘총선 이후 상의하겠다는’ 답변만 보내왔다.
5년간 실체 없이 끌어온 삼성의 새만금 투자가 ‘새만금에 투자할 계획이 없다’는 통보로 결국 무산됐다. 삼성의 투자 약속을 두고 홍보한 이들 가운데 책임지겠다는 사람은 없다.
이에 삼성의 새만금 투자협약 양해각서 이행 무산 등을 조사하는 전북도의회 특위의 활동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전북도의회 양용모(전주8)·국주영은(전주9) 의원은 이달 3일 도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삼성의 새만금 투자협약 MOU 체결 경위와 배경을 따지겠다”고 밝혔다.
오는 7월 구성되는 도의회 특위는 삼성의 새만금 투자협약 사항을 비롯해 2009년 이후 전북도와 각 기업이 맺은 새만금 투자협약 내용의 이행 여부를 조사할 계획이다. 투자협약 이후 진척이 없는 새만금 투자를 면밀히 분석해 도의회 차원의 새만금 투자 유치 활성화 방안을 도출하겠다는 구상이다.
양용모 의원은 29일 “새만금에 투자하겠다는 의향을 보인 80여개 기업 중 실제 새만금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은 5곳에 불과하고, 이 중 하나인 OCI는 최근 투자계획을 철회했다”며 “특위가 구성되면 국무총리실과 삼성을 항의 방문해 도민들에게 상실감과 허탈감을 안긴 대도민 사기극의 책임을 묻는 등 진상 규명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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