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연방 재무부는 20달러 지폐의 앞면에 들어갈 인물을 교체키로 하고, 서민 대통령을 자처했던 미국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 대신해 19세기 흑인 인권운동가 해리엇 터브먼(Harriet Tubman)을 최종 선정했다.
해리엇 터브먼은 1822년을 전후해 메릴랜드주 벅튼의 한 농장에서 태어났으며, 노예신분이었기 때문에 정확한 출생일자 등 기록이 없고 출생 당시 이름이 아라민타 해리엇 로스였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녀의 조부모는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예였으며, 그녀는 6살 어린 나이에 부모와 떨어져 혹독한 노동착취에 시달렸다.
1844년 노예신분에서 풀려난 흑인 남성 존 터브먼과 결혼하면서 남편의 성을 따라 해리엇 터브먼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터브먼은 27살 때 당시 흑인노예들의 탈출을 돕던 비밀조직망인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의 한 조직원을 만나서 1849년 필라델피아로 도망쳐 자유를 얻는데 성공했고, 이후 가족과 친지를 비롯해 많은 흑인노예의 탈출을 도와 자유를 찾게 한 인권운동가로 변신했다.
정의감이 넘쳤던 그녀는 15세의 어린 나이에 노예들의 탈출을 돕기 위해 감시관에게 반항하다가 머리를 심하게 얻어 맞아 그 후유증으로 평생 수면발작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녀는 남북전쟁 전 약 300명의 노예들을 탈출시킨 신화적인 흑인여성이며, 1860년대가 되자 해리엇은 노예들을 성공적으로 탈출시킨 ‘흑인들의 모세’로 알려지게 된다. 1863년 그녀는 여성해방운동에도 지지연설을 펼치는 등 소수자문제를 해결하는데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노예제도 폐지문제를 둘러싸고 남북전쟁이 발발하자, 해리엇은 북군 정보원으로도 일했고 병원에서 병사들을 간호하기도 했다. 그뿐 아니라 150명의 흑인 군인을 직접 이끌고 싸워 약 800여명의 노예들을 해방시키기도 했다. 남북전쟁이 끝난 후에는 돈을 모아서 나이들고 갈 곳없는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지었으며, 흑인들의 인권과 여성 참정권을 위해 투쟁하다가 91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다.
현재 메릴랜드주 케임브리지 지역에는 해리엇 터브먼을 기리는 기념관이 운영되고 있다.
참고로 미국의 지폐 앞면에 새겨진 인물은 다음과 같다.
△1불=죠지 워싱턴 △2불=토머스 제퍼슨 △5불=에이브러햄 링컨 △10불=알랙산더 해밀턴 △20불=앤드루 잭슨(구권), 해리엇 터브먼 (신권) △50불=율리시스 S. 그랜트 △100불=벤저민 프랭클린.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