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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보통의 청년들

▲ 김지훈 국악기획단 아따 대표

“보통 남자를 만나 보통 사랑을 하고 보통 같은 집에서 보통 같은 아이와 보통만큼만 아프고 보통만큼만 기쁘고 행복할 때도 불행할 때도 보통처럼만 나 살고 싶었는데...”

 

라디오에서 백지영의 ‘보통’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가사를 들어보면 여자는 남들처럼 보통의 삶을 살고 싶었다고 한다. 헌데 나쁜 남자를 만나 상처를 입었다는 흔한 ‘사랑’ 이야기였다. 하지만 유난히 정지 신호가 길어서였을까. 이 노래를 듣는 내내 필자는 보통이라는 말에서 어딘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최저 기준으로 살아가는 청년들

 

10년 전에는 나도 대학생이었다. 졸업 후에는 남들처럼 직장에 들어가고, 때가 되면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면 아파트에 살며, 토끼 같은 자식을 낳으리라 믿었다. 당시 내가 생각했던 삶에서 보통의 높이가 100 가운데 80이었다면,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내 기준에서 보통의 기준은 100 가운데 50, 절반에 겨우 턱걸이를 하고 있다. 사람답게 살길 원했던 10년 전의 나와 달리, 지금의 내가 생각하는 보통의 삶은 생존을 위한 마지노선이 되었다.

 

해가 바뀌면 어김없이 최저 시급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최저 시급을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한편에서는 최저시급을 주는 고용주를 ‘저 정도면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최저의 사전적 정의는 ‘가장 낮음’인데, 가장 낮은 보상을 주는 고용주는 그나마 양심적인 사람인 것이다. 버스정류장에 붙은 구인광고를 본 적이 있다. 사업주는 대학을 나온 인재를 모집하고 있었고, 당당하게 최저 임금을 준다고 적어 놓았다. 그보다 못한 처우를 받으며 일하는 환경이 얼마나 흔하면, 최저임금을 준다는 사업주의 어깨에 저렇게 힘이 실렸을까.

 

최저임금을 보장하라는 문구가 자주 들릴수록, 최저라는 말은 본디의 뜻을 잃고 보통이 되어간다. 왜 우리는 최저의 기준을 지키는 고용주를 찾아야 할까? 청년들에게 보통이 아닌 최저의 기준을 강요하는 건 우리 사회였다. 보통의 평범한 삶을 꿈꾸며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에게, 최저임금 사수는 왜 감사한 말이 되어야할까.

 

청년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 중 하나가 ‘노답(답이 없다)’이다. 개념이 없는 사람을 지칭하던 이 표현은, 이제 한국 사회는 ‘노답사회’라는 범위로까지 넓어졌다.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최저의 기준이 보통이 되는 사회. 필자 역시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미래의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는 절로 노답이라는 말이 나온다.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 이라는 책에서, 저자인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행복한 삶의 방식을 의지박약한 젊은이들의 잘못이 아니라 이토록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게 만든 기성세대들의 업보라고 말한다. 기성세대는 성실하지 않은 청년들의 태도를 비난하며 대기업을 보지 말고 중소기업에도 눈을 돌려라, 기준을 낮추라고 이야기한다. 지금의 환경에서 스스로 만족하고 위안하는 방법을 알면 행복해질까? 청년들은 어떻게 해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 선택하고 싶은 답이 점점 없어지고 있음을 청년들은 점점 깨닫고 있다.

 

행복한 삶 위한 선택지 사라지는 사회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사회과목 시험에는 이런 문제가 나올 것도 같다.

 

주관식 1. 2015년, 우리나라의 청년들은 당시 시대상을 어떤 단어로 표현했는가?

 

정답은 세 글자, ‘헬조선’이라고 적어야 할 것이다. 최저를 넘어 보통의 삶을 꿈꾸며, ‘나만의’ 행복 기준을 추구하며 살고 싶지만, 주변에는 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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