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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산 기슭에 사는 이유

도심 속 낡은 아파트 주변 우거진 녹음·시원한 바람, 고향 임실 산천 모습 흡사

▲ 이인섭 국회입법조사처 경제산업조사실장

고향!

 

누구나 고향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포근함과 그리움에 젖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나처럼 임실 산골 출신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눈을 감으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고향모습은 첩첩이 쌓인 시골 산들의 모습이다.

 

봄이 오면 온 산을 진달래가 붉게 수를 놓는다. 여름이면 짙게 녹음이 우거진 산에서 요란하게 울어대던 매미 소리가 지금도 귓전을 울리는 듯하다. 가을이 되면 온갖 형형색색으로 물든 한 폭의 산수화를 보는듯한 고향 모습이 눈에 각인 되어있다. 겨울엔 토끼와 발을 맞춘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함박눈이 펑펑 내려 하얗게 쌓인 고향 산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22년 전 개화산 기슭에 지어진 낡은 아파트를 떠나지 못하고 사는 이유는 고향산천의 모습과 냄새를 조금이나마 느껴 보고픈 마음 때문이다.

 

개화산은 내가 사는 아파트를 비롯한 방화택지개발지구를 거의 270°정도 휘감고 있다. 그야말로 도심 속 시골이 바로 이곳 방화지구이다. 직장이 있는 여의도는 정치와 금융의 중심지답게 매일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사람이 넘쳐나는 혼란스러운 곳이다. 주간에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자동차로 17여분 떨어진 개화산 자락으로 돌아오면 시골 고향에 온 듯한 편한함이 느껴진다. 차를 몰고 한강을 따라 개화산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그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기도 하다. 처가는 목동에 있는데 여러 번 목동으로 이사를 오라고 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목동으로 갈 수 있는 기회도 여러 번 있었다. 일본 동경 주재관으로 갈 때, 교토로 유학 갈 때 등… 그러나 난 번번이 이 고향을 느낄 수 있는 개화산을 버릴 수 없었고 그때마다 고향 같은 개화산에 눌러앉았다.

 

아이들도 학군이 좋은 목동으로 보내라고 여러 번 연락이 왔었지만, 그때마다 난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뛰어놀던 때를 생각하고, 아이들이 자연과 매일 접하고 대화하면서 자라주기를 바랐다.

 

개화산은 나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가져 다 주고 있다. 개화산에 있기에 서울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공기가 깨끗하다. 개화산이 불어 주는 시원한 바람 덕택에 에어컨 없이 살고 있다. 주말 등에도 별도로 등산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이 시간 날 때마다 등산을 즐길 수 있다. 어린 시절 고향에서 느꼈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를 맡고, 손으로 만져 보며 살고 있다.

 

UN이 발표한 2015“세계행복보고서”에서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984점으로 158개 조사 대상국 중 47위였다. 더 잘살게 되고 생활이 윤택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외로움을 느끼거나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비율은 훨씬 더 늘어났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도시화가 빠르게 진행됨으로써 어렸을 때부터 산이나 강 같은 자연과는 동떨어진 곳에서 생활함으로써 정서가 메마르고 마음에 여유가 없는 생활을 지속함이 하나의 원인일 수도 있다.

 

행복감은 거창한 것에서 느끼기보다는 얼굴에 스치는 한 줄기 바람, 석양에 지는 노을, 들판에 핀 노란 야생화 등 오히려 작은 것에서 느끼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각박한 서울생활에서도 수시로 나를 낳고 길러준 고향 전북 임실 신덕 수천을 마음속에 그리면 부모·형제와 마을 이웃들 그리고 고향산천이 영화의 화면처럼 펼쳐지면서 행복감을 느끼곤 한다. 22년여를 나를 따뜻하게 감싸 안아 준 개화산을 통해 언젠가는 돌아갈 고향을 그려본다.

 

△이인섭 실장은 일본 동경 한국대사관 입법관, 국회 감사담당관, 법제실 경제법제심의관, 제주세계자연보전총회 추진기획단장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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