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태운, 바퀴 달린 탈것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가 뒤섞인 구조물 위를 미끄러지듯 굴러가고 있었다. 차창 너머로는, 참말로 대체 며칠 만에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파란 하늘 밑으로 노란 평면이 꾸물대고 있었다.
대야. 이름 그대로 ‘큰 들판’ 속으로 탈것은 굴러 들어갔다.
도시와 농촌의 경계를 타고
옛 군산선(군산화물선) 철길은 나운동 등 군산 시내 중심가를 지나 사정동으로 빠져나온다.
사정삼거리를 지나면 철길 남쪽으로는 널따란 논이 펼쳐지고, ‘전군도로’로도 불리는 번영로가 철길 옆에 바짝 붙어 함께 달린다.
최근 결정된 전북대 병원 신축부지가 이 부근이고, 군산소방서가 여기에 있으며, 차도를 건너면 지난 2009년에 기아 타이거즈가 정규시즌 우승을 확정 지었던 월명 경기장이 있다.
‘농촌 풍경’과 ‘도시 풍경’ 사이의 경계를 이루는 것은 바로 군산화물선 철길이다.
지금은 열차도 다니지 않고, 또 각종 풀과 넝쿨이 레일을 휘감고 있어 당장은 열차가 다닐 수도 없는 상태지만, 그래도 철길은 철길. 아직은 엄연히 철도거리표에 올라 있는 노선이라 함부로 건드릴 수도 없다.
군산시 입장에선 이런 철길들은 도시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도심인 수송동 일대는 군산화물선에서 갈라지는 옥구선 철길 때문에 도로 확장 하나도 하기가 어려운 실정.
그래서 장항선 연결 개통 이후 꾸준히 ‘도심 철도를 철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아무래도 군장국가산업단지 인입철도가 개통되기 전까지는 철거는 어려울 것이다.
철길에서 ‘낭만’을 찾는 사람이야 이 몇 년의 유예기간이 반가울 터지만…….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붉게 녹슨 철길은 들판의 가장자리를 타고 동쪽을 향해 곧게 뻗었다.
간이역의 일생, 개정역
군산에는 ‘개정’이라는 이름을 가진 행정구역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개정동’이고 또 하나는 ‘개정면’이다. 원래는 ‘옥구군 개정면’으로 한 덩어리였는데, 1973년에 옥구군의 개정면 개정리와 옥산면 사정리가 각각 개정동, 사정동이라는 이름으로 군산시에 편입되면서 이렇게 됐다.
1995년에 군산시와 옥구군이 합쳐지면서 ‘옥구군 개정면’이 ‘군산시 개정면’으로 바뀌었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 기초자치단체 안에 같은 이름을 가진 행정구역이 두 개가 된 것이다.
옛 군산선 개정역은 개정동에 있다. ‘역’이라고는 해도 사실 줄곧 ‘간이역’으로 있었으니 번듯한 건물 하나 찾기가 어렵다. 있어야 찾지.
개정파출소 맞은편에서 오른쪽으로 샛길 따라 들어가서 어림잡아 20m쯤을 걸어가면, 노란 들판 앞에 서 있는, ‘개정역’·‘열차야! 달려다오’라고 쓰인 팻말이 눈에 들어온다. 물론 달려달라는 말을 들을 열차는 지금 이곳엔 없다.
통근열차가 다니던 시절에는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볼 수 있는 벽돌로 된 간이 대기실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것도 없다. 단지 옛날 플랫폼으로 쓰였던 콘크리트 구조물이 있을 뿐이다.
철도산업정보센터에 따르면 개정역은 1924년 ‘역원배치간이역’ 등급으로 문을 열었다.
근처에 ‘구마모토 농장’이 있었으니, 일제 강점기에는 나름대로 ‘중책’을 맡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후 수요 감소로 인해 1972년에는 무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됐고, 2008년 1월 1일부터는 장항선 연결로 옛 군산선에는 여객열차가 다니지 않게 되면서 사실상 ‘버려진 역’이 됐다.
한편 개정역 주변에는 군산의 주요 역사문화유산 중 하나인 ‘이영춘 가옥’이 있다. 군산간호대학교 안에 있는 일본식 건물인데, 원래는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이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건물의 건축비와 맞먹는 비용을 들였다고도 알려져 있다.
‘자혜의원’ 원장으로 부임해 개정 지역의 소작인들을 돌봤고 광복 이후에는 ‘개정중앙병원(개정병원)’, ‘개정간호학교(군산간호대학교)’ 등을 세운 농촌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이곳에 기거했다.
이제는 서울로 통하는 군산선 최후 생존자
머리 위로 29번 국도와 장항선 새 고가철도가 지나가고 나면 야트막한 고개를 하나 넘는다. 사실 딱히 ‘고개’라고 할 것까지도 없지만, 쭉쭉 뻗은 평야지대에 이 정도의 기복이면 ‘고개’라고 불러줘도 틀린 표현은 아닐 것이다.
‘대야’는 문자 그대로 ‘큰 들판’이라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다. 면의 북쪽으로는 얕은 구릉 지대가 있지만, 남쪽으로는 마치 김제의 그것과도 같은 광활한 평야가 펼쳐져 있다.
개정뜰을 스쳐 달리던 철길은 북쪽에서 내려오는 장항선 새 철길과 만나 지경리 평야지대의 가장자리를 타고 흐르며 대야역에 닿는다.
대야역은 옛 군산역과 나이가 같다. 둘 다 1912년생, 개업일도 3월 6일로 같다. 그러니까 대야역 또한 군산선 개통과 동시에 문을 연 ‘원년멤버’인 셈이다.
물론 지금 있는 대야역 건물은 옛 건물 그대로는 아니고, 1991년에 새롭게 지어진 것이다. 전형적인 ‘볼록할 철(凸)’형 시골 기차역 형태를 갖고 있다. 70~80년대에 유행했던 역사 양식으로, 전북지역에서는 신리역이나 황등역에서 이런 모양을 볼 수 있다.
차이점이라면 신리역(1981년 준공)이나 황등역(1982년 준공)과 달리 대야역은 90년대에 유행한 적벽돌을 외장에 활용했다는 점 정도일까.
대야역의 본래 이름은 ‘지경역’이다. 개업 당시 등급은 개정역과 같은 ‘역원배치간이역’이었는데, 개업한 지 7달 만에 ‘보통역’으로 승격했다. 지금과 같은 ‘대야역’이라는 이름은 1953년에 붙여졌다.
대야역사(史)에 따르면, 대야역은 1940년대에 이른바 ‘리즈시절’을 보냈다. 여객 승하차 합이 1940년 한 해 36만 명이었고, 1942년에는 무려 64만여 명에 달한다. 참고로 2015년 군산역 여객 승하차 인원이 43만7266명이었다.
1940년대의 이 ‘번영’은 일본의 식민지배와 어떻게든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화물 운송량을 보면, 1943년 발송화물이 1만1075톤, 이듬해인 1944년은 2만74톤이었다. 같은 해 도착화물이 각각 1251톤, 1745톤에 불과했다. 나간 화물의 대부분이 군산항을 통해 수탈된 쌀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대야역의 여객수송량은 그러나 이후 꾸준히 줄어, 2000년대에 이르면 승하차 합계 3만 명을 겨우 채울 수준이 되고 만다. 2014 철도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2014년 대야역의 여객 승하차 인원은 8362명. 개업 첫해인 1912년 승하차 인원이 3만4000여 명이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옛 군산선의 역 중 유일한 생존자다. 개정역, 임피역, 오산리역이 문을 닫고 군산역은 이사를 간 가운데, 대야역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다만 역의 일부 기능이 축소됐다. 역사 서편에 남아 있는 넓은 공터가 그 증인이다. 2000년에 지어진 이 컨테이너 야드는 물론 대야역에서 화물을 취급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2008년 장항선 연결 개통 이후 화물 취급 기능을 새 군산역에 넘겨줬다.
지금은 장항선 무궁화호 열차가 하루에 상행 4회, 하행 5회 정차한다. 통근열차가 다니던 시절과 비교하면 많이 한적해진 것이긴 하지만, 여기서 열차에 한 번 오르면 서울(용산역)까지 갈아타지 않고 갈 수 있으니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활기를 얻었다고도 할 수 있다.
“서울까지 바로 가니까 편하지. 몸이 편치가 않아서 갈아타는 게 힘드니까.” 용산행 열차를 기다리던 최모 씨
취재팀이 찾아간 10월 4일, 대야역 승객 대기실은 조용했다. 용산행 열차를 기다리던 두어 명과 취재팀뿐이었다. 평일인 데다, 철도 파업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루 평균 30여 명? 주말이 되면 좀 많죠. 학생들, 그러니까 호원대 학생들은 주말에 많이 이용하고.”
김성규 부역장(55)의 설명이다. 호원대는 사실 임피역에 더 가깝지만, 임피역에는 열차가 서지 않으니 대야역까지 가야 한다. 약 7㎞ 정도 거리라서 걸어 다닐 만한 것은 아니지만, 호원대에서 출발해 대야사거리를 지나 군산 시내로 들어가는 38번 버스를 타면 된다.
특히 여름에는 대천으로 가는 승객이 많다고 한다. 대천 또한 장항선 철도로 한 번에 갈 수 있으니 ‘윈윈’이다.
얼마 안 가 사라질 것들
‘역전’ 시리즈 간판들이 맞이하는 거리를 벗어나 대야검문소 사거리로 나선다.
이 길을 경계로 동북쪽은 산월리, 서남쪽은 지경리인데, 길을 건너 산월리로 들어서면 나오는 것이 매 1·6일 대야 5일장이 열리는 대야시장 거리다.
검문소 사거리 바로 동쪽에는 검문소 삼거리도 있다. 그 사이에는 철길이 지난다. 열차가 자취를 감춘 군산화물선 같은 것이 아니라, 하루 50여 차례 여객·화물열차가 지나다니는 장항선 철길이다.
시장이 역 근처에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대야면을 관통하는 큰 도로의 가운데에 철길 건널목이 있다면 좀 불편한 것도 사실. 버스터미널도 이 근처에 있는데, 간혹 대야를 경유하는 군산~전주 간 시외버스도 건널목 차단기에 걸려 멈춰 서기도 한다. 거기에 장날이면…….
그런데 건널목 관리원 신웅철 씨(62)의 답은 좀 ‘쿨’했다.
“뭐 얼마 안 가서 없어지잖아요. 저쪽 복선전철 지어지니까.”
옛 군산선 단선 철길을 쓰는 장항선 익산~대야 구간을 대신할 복선 철도 공사가 진행 중인데, 군장국가산업단지 인입철도가 이 새 장항선 복선 철길에서 분기할 예정이다. 2018년 완공 예정인데, 한두 해 정도는 미뤄질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그때가 되면 대야역도 새 철길 곁으로 옮겨갈 것이고, 대야건널목도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다행히 대야역의 기능은 보존된다고 한다.
“여기는 아직인데, 임피 넘어서 까지는 노반 공사가 많이 진척이 됐어요. 여기도 없어지겠죠. 포철에서 이거 다 조사해갔어요.”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풍경 속에서, 대야역은 그렇게 백 년 넘게 지켜온 자리, 이제 얼마 뒤면 비워줘야 할 자리에 그렇게 그대로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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