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 무소유의 정신
나와 내 아내는 집안 살림 정리정돈 문제로 자주 다툰다. 아니 다투는 정도가 아니라 때로는 극렬하게 싸운다. 아파트 앞뒤 베란다에 그득한 장독·양은 그릇·소쿠리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거실이건 주방이건 식탁이건 온갖 잡동사니들이 발길에 차일 정도다. 방 안 사정은 어떤가. 단독주택 살 때 들여놓은 자개농이 여전히 안방을 차지하고 옷장·장식장·책장·가전제품 나부랭이들이 입추의 여지없이 들어차 위용(?)을 뽐내고 있다.
20여 년 전에 지인(知人)을 돕겠다고 들여놓은 실내 운동기구 한 개가 고철 덩어리로 거실 한쪽을 버젓이 지키고 있을 정도다.
그뿐이 아니다. 결혼 이후 40여 년 동안 안 입었던 옷가지며 아이들 중·고등학생 때부터 대학 졸업 이후까지 입었던 각종 캐주얼까지 옷장 속은 물론 에이드에까지 담겨 알뜰히(?) 보관돼 있다.
그중에는 한두 번 입어 봤거나 아예 개봉도 안 된 채 상자 속에서 잠자는 것들도 수북하다. 신발장 속에는 내가 신는 몇 켤레의 구두나 운동화·등산화 정도를 빼고 아내의 신발만 50켤레가 넘는다.
아예 중고 신발가게 수준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오래된 냉장고를 대체해서 새로 들여놓고도 그것을 그냥 버리지 않고 묵혀 두며 전기료만 물고 있는 것은 또 어떤가. 퇴직 후 서재로 이용하고 싶어 책장을 갖춰뒀던 방은 아예 식료품·박스·생활도구 저장 창고가 된 지 오래이니 더 말해 무엇하랴.
자, 사정이 이러하니 살림살이 정돈 문제로 다툼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걸 좀 치우고 정리하면서 살자는 게 내 주장이고 살림살이는 내 소관이니 단 한 가지도 손도 대지 말라는 게 아내의 주장이다. 도대체 좋게 사정하고, 호소해도 아내는 막무가내다. 한 번 집에 들어온 것은 포장지 한 장, 상자 한 개, 하다못해 비닐 끈, 봉투 한 장도 그냥 버리지 못하는 게 아내의 고집이다. 한 번은 아내가 집에 없을 때 몰래 내다 버린 잡동사니 속에 압력 밥솥이 들었었는가 보다. 좌우간 한낮 동안 싸웠고 지금도 내 경거망동(?)은 지청구 덩어리로 남아 있다.
어떤 책자에서 보니까 아내의 이런 못 버리는 습관을 저장강박증 때문이라고 한단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욕심으로 아무리 작고 볼품없는 물건도 버리지를 못하고 끌어안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정신의학적으로는 이런 습관이 일종의 병이라고 할 수도 있나보다. 70줄들을 넘겨 이제는 며느리 눈치도 봐야하고 혹시라도 모를 치매(?) 걱정도 해야 할 나이에 이런 하찮은 일로 ‘좁쌀 영감’ 소리까지 들어가며 다투다니 내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싸울 때마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남편에게 대드는 아내의 고약한 버릇 때문에 울화통이 터지긴 할지라도 ‘그래도 내 아내인데…’하는 측은지심으로 참고 지낸다.
이제 무더위가 물러가면서 가을 문턱을 넘어섰다. 지난 여름동안 입었던 캐주얼이며 등산복 나름을 챙기면서 가을 옷을 찾아보다가, 아니 아내가 집을 비운 사이 점심을 챙겨 먹으려다가 문득 이 널브러진 잡동사니 때문에 속을 끓이며 상념(想念)을 옮겨 본다. 좌우간 이제 계절도 바뀌었으니 버려야 할 것을 미련 없이 지금 버리고 조금 더 환하고 정리 정돈된 집안 분위기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모르면 몰라도 내 집안 말고도 비슷한 환경, 비슷한 골칫거리를 가진 집이 수월치 않게 많으리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법정(法頂) 스님이 그랬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이라고. 그 어른 말씀이 이 글에 맞는 것인지 어찌했는지는 잘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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