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폐산업시설 재생 지원…전국 15곳 추진 / 전주 팔복예술공장·완주 누에 내년 개관 목표 / 역사·특성 고려 공간 용도 모색, 지속성 고민을
쓰임새를 다한 공간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공간재생. 주로 구도심활성화를 목적으로 이뤄지던 도심재생사업이 최근에는 폐산업시설 재생으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더욱이 지난 2014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지원에 나서면서 전국의 자치단체들이 산업유산 재생에 나서고 있다. 전북에서도 완주와 전주에서 ‘공장의 품격있는 변신’이 진행되고 있다.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은 영국과 독일 등 산업선진국을 중심으로 오래전부터 진행됐지만 성공적인 재생 못지않게 실패사례도 많다. 국내에서 이뤄지는 산업시설 문화재생사업들이 사전 준비기간을 두고 공간재활용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한 후 사업에 착수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폐산업시설을 문화예술공간으로 변화시킨 국내외 사례를 찾아 산업유산 문화재생사업이 나아갈 방향을 여섯차례에 걸쳐 모색해본다.
전주시 덕진구 구렛들1길 46, 전주제1산업단지 한복판. 하늘높이 솟은 굴뚝에는 1970∼80년대 호황을 누렸던 카세트테이프 생산회사 ‘쏘렉스’라는 글자만 희미하게 남아있다. 시멘트로 지어진 두 동의 건물은 CD(Compact Disc) 등장에 밀려 1990년대 초반 문을 닫았다. 20여년 동안 방치됐던 이 공간에 올해초 부터 활기가 돌았다. 전주시와 전주문화재단이 문화재생에 착수하면서 부터다.
산업단지 문화재생사업은 기능을 잃고 방치된 폐산업시설을 예술로 재창조해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는 것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산업화에 앞선 국가들은 오래전부터 산업유산 문화재생이 활발했고, 우리나라에서도 십여년전부터 관심을 가져오다 최근에는 정부차원에서 재생사업을 지원하고 있다. 산업유산 문화재생은 공간 재생의 차원을 넘어 시민과 공단 근로자들의 문화예술활동 참여와 향유기회 확대, 이를 통한 쇠락지역 활성화가 목적이다.
현재 정부 지원을 받아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이 이뤄지는 곳은 전국적으로 15곳. 전북에서는 완주와 전주에서 사업이 진행중이다. 완주군은 지난해부터 삼례농협비료창고를 책마을 문화센터로 조성해 올 8월 개관했다. 완주군 용진면의 옛 농업기술원 종자사업소 잠업시험지도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전주에서는 전주제1산업단지내 옛 쏘렉스공장이 문화예술공장으로의 탈바꿈을 준비하고 있다.
완주의 잠업시험지에는 누에를 키우고 관리했던 21개 건물이 남아있다. 이 가운데 10개 동을 지난해부터 문화예술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8개 동은 목공이나 섬유, 도자, 뉴아트교육장과 전주장복원연구소 등 공예중심 시설로 조성됐으며, 2개 동은 예술가들의 레지던스 공간과 전시장이나 공연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밀 예정이다. 마당에는 문화예술을 매개로 머물면서 즐길 수 있는 문화놀이터를 만들 계획. 재생공간의 새로운 이름은 ‘공동창조공간 누에(nu-e)’다. 임승한 사업단장은 “지역주민들의 생활문화공간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라며 “전시를 보고 공연을 관람하는 것만이 아니라 결혼식도 올리고 영화도 보며, 캠핑도 하는 종합 문화예술놀이터로 가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주의 ‘팔복예술공장’도 예술을 매개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이를 창작으로 연결해내는 공간으로 꾸며질 전망이다. 이곳에서는 매주 한차례 공간조성을 위한 집담회가 열린다. 인근의 주민과 예술가, 공단 근로자 들이 참여해 예술공장의 밑그림을 그린다. 공간이 지닌 역사와 특성, 이에 기반한 콘텐츠에 대한 고민을 전제로 공간의 성격과 쓰임새를 모색하는 것이다.
황순우 팔복예술공장 총괄기획자는 “팔복예술공장은 장기적으로는 예술과 산업(기술)이 만나는 공간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예술가에게는 창작의 마당이 되고, 공단 근로자와 기업에게는 예술활동을 누릴 수 있는 창구가 되는 것이다. 공단에서 생산되거나 버려지는 다양한 물품이 예술적으로 재활용되는 예술창고의 기능도 기대한다. 이러한 목적에 맞춰 예술가와 시민이 참여하는 파일럿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집담회 및 파일럿 프로그램 등을 지켜보며 새로운 공간의 성격을 명확하게 할 방침이다.
공동창조공간 누에와 팔복예술공장은 올해 파일럿 프로그램 운영을 통한 밑그림을 그린 후 2017년 정식으로 개관하게 된다. 두 시설에 투입되는 예산은 국비와 지방비 등 83억원이다.
공장의 변신은 시작됐지만 제약도 있다. 두 공간은 도심과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팔복예술공장은 산업단지 복판에, 공동창조공간 누에는 도심 외곽에 있다. 따라서 창의적이고 매력있는 공간 조성이 관건. 이미 문화재생을 마친 공간 가운데 취지대로 문화예술거점으로 기능한 곳도 있지만 터덕거리는 사례도 많다. 정부지원을 받는 폐산업시설 문화재생이 그동안의 재생사업처럼 예산을 확보해 공간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와 운영방식에 대한 고민을 우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과 현장의 욕구를 공간 운영과 설계에 반영, 장소와 지역의 가치를 재창조하는데 공을 들인다. 단순히 공간 재사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생된 공간을 중심으로 지역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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