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혼란에 빠진 정국 수습의 첫 단추로 김병준 총리 내정자의 지명철회를 제시했지만 임명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이려는 기미를 보이지 않는데다 당사자인 김 내정자가 자진사퇴를 거부해 정국이 더욱 꼬여가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김 내정자 사퇴문제를 둘러싼 여야의 대치 전선이 더욱 가팔라지면서 정국의 시계가 더욱 흐려지는 양상이다. 김 내정자는 지난 5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열린 딸 결혼식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자진사퇴에 대한 입장을 묻자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국민적 저항이 거센 데다 여권에서 조차 절차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자진사퇴나 내정철회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거절한 것이다.
김 내정자의 이 같은 입장표명은 야권의 반발을 불러왔다.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별도 특검 및 국정조사, 김 내정자 철회와 국회 추천 총리 수용, 박 대통령의 2선 후퇴 등의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정권퇴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천명한 바 있어서다.
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날 광화문광장에서의 고(故) 백남기 농민 영결식장에서 “국민 정서와 야당 분위기를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대통령이 철회하든지 본인이 사퇴하든지 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이어 “박 대통령 퇴진 투쟁까지 얘기하는 데 김 내정자 사정을 봐줄 여력이 없다. 여당에서도 상당수 부결할 것 같은데 굳이 시간을 끌 필요가 있느냐”며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강경투쟁으로 간다. 공은 대통령에게 넘어갔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작 박 대통령은 현 단계에서 김 내정자의 지명을 철회할 가능성은 커 보이지 않는다는 관측이 우세한 상황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번 주 초 청와대가 김 내정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면 정국은 더욱 혼미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야권은 또다시 “일방통행”이라며 강력 반발하는 가운데 여당인 새누리당의 친박 지도부는 박 대통령의 뜻에 따라 김 총리 인준 쪽으로 드라이브를 걸려고 할 것이라는 관측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아직 김 내정자에 대한 청문 요청서가 넘어오지 않았는데 접수되면 그때부터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이 같은 상황을 부연했다.
하지만 민주당과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 3당은 청문 요청서가 오더라도 청문 절차 자체를 보이콧하기로 합의한 상태여서 현재로서는 통과 가능성이 희박하다.
국무총리 후보자로 인준 받기 위해서는 ‘재적 의원의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의 과반 찬성’을 받아야 한다. 여소야대 국회인 만큼 야당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따라서 야권이 현재의 공조를 유지한다면 김 총리 인준 절차는 개시조차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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