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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시위 열린 전주 풍남문 광장…"대통령, 나라를 위해 퇴진 결단해야"

전북도민 2000여명 모여 앉아 "박근혜 정권 물러나라" / 예술인들 시국 풍자 '굿'…초·중생도 울분 쏟아내

서울 광화문 광장에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리면서 전주는 ‘작은 집회’가 될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초등학생 이름이 등장하고, 발언대 앞에서 “닭은 닭장으로 가야 한다”라고 했을 때 한 방 맞은 기분이었다.

 

지난 12일 오후 4시 전주시 전동 풍남문 광장에는 도민 40여 명이 모여 대형 스크린을 응시했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가지 못한 지역민들이 동시간대 진행중인 인터넷 방송을 보며 시대의 시류에 순행하고 있는 광경. 개그우먼 김미화 씨가 나와 “(박근혜 대통령)무조건 방 빼!”라고 말하자 시민 수 십 명이 깔깔 웃었다.

 

이날 집회는 ‘박근혜 정권 퇴진 전북비상시국회의’가 신고했고, 참여자치전북시민연대가 주도했다. 이들은 모든 힘이 서울로 집중돼 전주에서는 ‘작은 집회’가 되리라 짐작한 터라 실제 소출력 스피커와 소량의 촛불을 준비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 의도가 적중하지 않았다.

 

오후 4시 30분 중앙성당 앞에서 모인 예술인 등 200여 명은 ‘우리가 모두 블랙리스트 예술인이다’라는 문구가 새겨진 대형 깃발을 들고 광장에 입성했다. 전북민예총의 현 시국을 풍자한 시 ‘굿’ 공연으로 주변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었다.

 

오후 5시 30분 노을이 지자 광장에는 도민 1500여 명 이상(경찰 추산 1000명·주최 측 추산 2000명)이 모였다. 인파에 파묻혀 도리어 주최 측의 존재감이 없어 보였다.

 

오후 7시 30분 서울 광화문 광장의 집회 참가자가 100만 명(주최 측 기준·전북지역 1만 2000명 포함)을 넘겼다는 소식에 힘 입어 풍남문 광장 자유발언대에서는 어린 연사(演士)들의 울분이 쏟아졌다.

▲ 지난12일 오후 전주 풍남문광장에서 전주시민 2000여명이 집회를 갖고 있다. 안봉주 기자

완주중 2학년 최하람 군은 “대통령 지지율이 5%면 물러나라는 소리”라고 말했고, 북일초 6학년 김보람 양은 “닭은 닭장으로 가야 하는데, 인간이니까 감옥으로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후 8시 20분 광장을 가득 메운 도민들은 인도와 도로 한 차선을 따라 새누리당 전북도당을 향했다. 길게 늘어진 대열에 경찰 10여 명이 붙었다. 이번 촛불시위의 뚜렷한 특징이라면, ‘중앙통제식’이 아니라는 점이다. 시위를 ‘주도’하는 단체가 있었지만, 지켜야 할 ‘선(線)’을 넘지 않았다.

 

“박근혜 퇴진”에 목소리가 집중됐고, 민감한 정치적 구호는 들리지 않았다. 집회가 끝난 뒤 경찰에게 “수고했다”며 박카스를 건네는 한 시민의 모습에서 ‘박근혜 퇴진’의 순수한 결기가 느껴졌다.

 

공식적으로 집회가 끝난 것은 오후 8시 55분이었지만 수많은 시민들이 자정까지 착잡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위해 천막 앞에는 참가자들이 긴 줄로 늘어섰고, 서명 용지가 부족해 이면지를 사용했다.

 

광장 입구에서 태극기를 목에 두르고 ‘박근혜는 퇴진하라’를 외치던 박종수 씨(57·익산)는 “새누리당 전북도당까지 행진으로 끝나는 것이 아쉬워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 2차 집회를 이어가고 싶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

 

자전거 동호회 ‘산타나’ 회원 20여 명은 광장에 모여 대통령이 하야해야 할지, 2선 퇴진으로 가야 할지 열띤 토론을 벌였다. 회원 조권재 씨(53·전주)는 “중요한 나랏일에 방관하면 역사적 죄인으로 남을 것 같아 거리로 나왔는데, 대통령이 결코 쉽게 결정을 내릴 것 같지 않다”며 종이컵에 소주를 따랐다.

남승현·김보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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