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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암사와 석전기념관

한국 정신사 큰 맥, 구암사 / 우리 불교 3대 강백, 석전 / 그 기념관이 있어야 할 곳

▲ 객원논설위원

나라가 온통 시끄럽다. 사교(邪敎)끼 있는 여인이 대통령을 꼭두각시 삼아 분탕질 치는 바람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다. 다행인 것은 지난 주말 100만 인파가 보여준 희망의 촛불이었다. 사태가 여기까지 온 데는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리더십이 원인이 아닐까 한다.

 

100여 년 전 이 불통을 지적한 분이 있다. 석전 박한영(1870-1948)이 그다. 석전은 1913년 ‘해동불교’에서 “치세의 근본이 인(仁)과 통(通)”이라며 “불인(不仁)과 불통(不通)을 제거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스님은 20세기 전후 우뚝 솟은 불교계의 큰 스승이요, 항일 운동가이자 시인이었다. 나아가 한국학의 대가요, 뛰어난 교육자였다. 얼마 전, 불교를 비롯한 한국 정신사의 큰 맥을 형성했던 구암사에서 석전기념관을 추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동감의 손뼉을 쳤다. 오히려 너무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석전의 행적부터 살펴보자. 그는 근세 한국불교의 3대 강백(講伯)으로서 불교를 바로 세우고 인재를 양성하는데 헌신했다. 동국대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 교장을 지내며 청담(조계종 2대 종정), 만암(3대 종정), 경보 철운(조정래 작가 부친) 등 불제자는 물론 이광수, 최남선, 정인보, 이병기, 신석정, 조지훈, 서정주, 홍명희 등 당대 최고의 지식인과 문인을 길러냈다. 또한 일제가 조선불교를 일본불교에 종속시키려 하자 호남과 영남지역 승려들을 규합해 조선총독부의 압력을 차단하는 선두에 섰다. 3·1운동 직후 결성된 한성임시정부 수립에 전북대표로도 참여했다. 더불어 석전은 최남선에게 단군고사(檀君古史)와 동명고강(東明古疆)의 한겨레 강역에 대한 가르침을 주었고 700여 수의 탁월한 한시를 남겼다.

 

다음, 조계종 초대 종정을 지낸 스님과 구암사의 관계를 보자. 구암사는 설파와 그의 제자 백파가 머물면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해 200년간 내노라하는 강백을 배출한 곳이다. 추사 김정희와 성리학자 기정진, 간재 전우는 구암사와 인연이 깊다. 조용헌은 구암사의 위상을 ‘당시 불교계의 서울대학교’라고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1895년 구암사에서 설유(雪乳)로 부터 법계를 받고 강원을 연 석전은 1910년 만해 한용운과 진진응 등을 구암사로 불러 일본의 조선불교 통합에 반대하는 숙의를 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 구암사 주지를 지냈다. 서울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수시로 구암사에 내려와 머물곤 했다.

 

그러면 왜 구암사에 석전기념관을 설립해야 하는가. 첫째, 구암사는 한국불교 강맥의 본류인데다 석전의 승가 본향(출생은 완주군 초포)이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 전 구암사 영각에는 백파와 석전의 영(影)이 있었고 석전이 아꼈던 추사의 족자 20폭과 여러 폭의 병풍, 옹방강의 달마도, 고희동과 김은호의 그림이 있었다. 또 석전의 장서 4만여 권 중 2만 권이 구암사에 있었다. 하지만 공비토벌이라는 명목으로 국군이 불을 질러 폐허가 되었다 최근 본래 모습을 상당부분 되찾았다.

 

둘째, 구암사는 문학과 항일운동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문학적으로 고창의 미당문학관, 부안의 석정문학관이 건립되고 익산의 가람 생가가 복원되었다. 그들의 스승인 석전의 기념관을 순창에 짓는다면 문학 순례코스로 적절하다. 또한 조선불교를 지켜낸 불교계 3인 중 만해의 기념관이 경기도 남한산성에, 백용성 대사의 죽림정사가 장수에 건립되었는데 석전기념관만 없는 상태다. 특히 만해기념관은 2008년 ‘스승과 제자-석전과 만해 특별기념전’을 마련해 그들의 돈독한 관계를 조명했다.

 

셋째, 구암사는 석전의 발자취가 묻어있는 내장사와 백양사의 중간에 위치해 그를 기리기에 적지(適地)다. 또 스토리텔링의 보고다. 내장사는 그가 입적한 곳이요, 백양사는 그가 배우고 가르쳤던 곳으로 문도들이 뜻을 잇고 있다. 지금은 전남북 3개 시군으로 나눠져 있으나 본시 같은 공동체였고 둘레길로도 안성맞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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