귓가를 스치는 매서운 바람이 겨울이 왔음을 실감하게 하고 있다. 경제한파로 예전처럼 북적북적한 연말연시를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길거리에서 간간히 보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한 해의 막바지를 알리고 있다.
이맘때가 되면 구세군 자선냄비가 거리로 나올 준비를 할 것이고 각계각층에서 소외되고 지친 사람들과 함께하려는 다양한 자선행사가 진행된다.
‘함께하는 삶’을 대표하고 ‘기부문화’를 오랜 시간 이끌어 온 말이 있는데 그것은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다. 이는 프랑스어로 ‘고귀한 신분’이라는 노블레스와 ‘책임이 있다’는 오블리주가 합쳐진 것으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우리에게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로 잘 알려진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 제국을 지탱해 준 힘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하였다. 로마가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와 치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 전쟁에서 최고지도자인 집정관(콘술)만 13명이 전사할 정도로 당시 로마 사회의 고위층은 솔선수범하면서 전장에 나가 사회의 귀감이 됐고 이것은 로마제국을 2000년 지속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영국의 경우 제1·2차 세계대전때 전사한 장병 중 명문사학인 이튼칼리지 출신이 2000여명에 이르고 있다. 미국의 경우 한국전쟁에 미국 장성 아들 중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당했다. 뿐만 아니라 당시 미8군 사령관 밴플리트의 아들이 공군으로 참전하여 야간폭격 중 전사하기도 했다.
현대사회에 들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적 신분이 높은 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행해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나 도덕적 의무로 이해되고 있는데 그것의 실체는 ‘기부문화’이다. 특히 사회 지도층이나 막대한 재산가의 기부를 통한 재산환원은 ‘부의 재분배’를 통해 안정화된 사회를 이끈 근간이 되고 있다.
실례로 몇 해 전에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 회장과 유명 투자가인 워런버핏은 한화로 약 32조원과 약 50조원을 각각 사회재단에 기부하였다. 이들의 막대한 기부 금액도 놀랍거니와 주요 선진국 국민의 60%이상이 다양한 형태로 기부활동에 나서고 있다는 것은 경이롭다. 이는 오랜 시간 사회지도층으로부터 시작된 ‘노블리제 오블리주’문화가 사회 전반에 토착화된 것을 말한다.
우리나라도 경제성장과 맞물려 빠르게 기부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간 기부금 전체 규모는 약2조원을 상회한다. 과거처럼 연말연시쯤에 일어나는 일회성의 기부방식을 탈피해 월 단위 정기적인 후원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특히 고무적이다.
아쉬운 점은 우리사회의 경우 이같은 기부문화를 사회지도층이 이끌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경우 대기업 총수들이 거액을 기부한 일이 있기는 했으나 그 시기가 형사처벌이나 사면과 관련된 시점이라 그 순수성이 의심되어 뒷맛이 개운치 않다. 또한 기부행위 자체가 가진 자가 못 가진 자에게 나누는 일종의 자비나 사치쯤으로 몰이해되는 경향도 있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 사회도 국민 모두가 사회지도층의 행동에 경의를 표하고 신뢰를 보낼 수 있다면 경제선진국을 넘어 그야말로 존경받는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존경받을 수 있는 사회고위층의 노블리제 오블리주의 실현이야말로 우리사회를 더 나은 사회로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 외국 언론에서 한국은 과거와 달리 사회지도층을 위시해 전 국민이 솔선수범하고 책임을 다해 함께 나누는 사회를 구현했다고 보도되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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