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 통하듯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일
그렇다면 과연 나는 정말 타고났을까? 내가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 본다. 유치원 때? 그것보다 조금 더 과거의 이야기다.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림 그리는 행위를 보는 것을 좋아했다. 항상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그것을 내밀며 그림을 그려달라고 했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나의 이름이 쓰여 진 스케치북에는 매번 다른 사람들의 그림으로만 가득 채워졌다. 그렇게 그림을 바라보기만 하던 꼬맹이의 첫 그림 입문은 바로 ‘먹지’의 존재를 알고부터였다. 그때부터 집에 있는 동화책 속 공주님이란 공주님은 죄다 베껴 그려지는 대상이 되었다. 좋아하는 그림은 몇 번 이고 베꼈다. 그림의 검정 라인이 덧그려진 나의 선들로 인해 너덜거렸다. 그러다 조금 더 크니 상상 속 공주님을 직접 그리게 되고, 집에 있는 사물을 보고 그리고, 풍경을 그리게 되더라. 나는 그냥 그림을 좋아하는 아이였지 특출난 재능을 타고난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림에 대한 관심이 특별히 많았던 것이 선천적인 부분이라면 그렇달까. 깊은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들이는 만큼 실력이 향상되는 것은 누구나 매한가지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타고난 자신의 성향과 잘 맞는 일은 있다는 것이다. 그림에 관심이 있었던 만큼 피아노 또한 좋아했다. 아직 손이 덜 자라 피아노를 칠 수 없을 만큼 작은 아이였을 때, 특별히 떼쓰는 것 없이 순했던 내가 피아노 학원 앞만 지나가면 그 앞에 앉아 울고불고 해서 엄마를 당혹케 만들었다고 한다. 그렇게 꽤 긴 시간동안 피아노를 배웠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던 피아노가 어찌 보면 미래의 직업으로 선택하기에 더 알맞았을지도 모른다. 한두 번 콩쿨에 나가 입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에서의 공포심과 실수에 대한 압박감 때문이었을까. 피아노는 나의 흥미에서 점점 멀어졌고 학원을 가는 것이 괴롭게만 느껴졌다.
여전히 무대에 서는 것이 참 힘들다. 대중 앞에서 이야기를 할라치면 평정심에서 벗어나 다양한 방법으로 강연을 망치고 돌아와 이불킥하기 일쑤이다.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림 공연을 할 때만큼은 예외다. 오히려 그들의 에너지를 받아 작품에 원 없이 표출한다. 그렇게 아낌없이 쏟아 그림을 완성하고 난 뒤 돌아서서 관객을 바라보았을 때의 그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남이 만들어 놓은 틀에 맞춰 살지 말자
나에게 피아노와 그림의 차이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아마도 영혼이 통하듯 오롯이 집중해서 그 행위에 빠질 수 있는 어떤 힘이지 않을까 싶다. 소울 메이트처럼 직업에도 소울 매치(Soul match)가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두 해를 나만의 소울 매치를 창조하기 위해 보내왔다. 그리고 2017년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길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지라도 남이 만들어 놓은 틀 속에 맞추어 살기 위해 나의 몸과 영혼을 깎아 우겨넣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신은미 씨는 성신여대를 졸업하고 전주한옥마을에서 아트샵 새라바림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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