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날에도 광장에 나온 어린 학생들의 그 마음이 예뻐서 이 시간과 공간을 기억할 무언가를 남겨주고 싶었어요. 캘리그래피로 각자 이름을 써서 주는데, 소중하게 들고 가는 모습을 보면 나도 기쁘고 ‘예술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지.”
국정농단으로 인한 국민들의 촛불 시위가 10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입춘은 지났지만 꽃샘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만들던 지난 18일에도 서울 광화문 광장에는 많은 촛불들이 거리를 밝혔다.
단체 ‘광화문 미술행동’ 대원인 도내 서화가 여태명(61) 원광대 교수 역시 광장을 지켰다. 그는 매주 광화문 광장에 나가 시민들의 이름을 쓴 손 글씨를 나눠준다. 국민들의 염원을 담은 서예 퍼포먼스도 펼친다. 심한 독감에 걸려 일주일을 누워 지낼 때에도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지난해 12월부터 광화문 광장에는 텐트촌이 생겨났다. 광장을 지키고 선 이들은 ‘광화문 미술행동’. 판화가인 김준권 대표를 주축으로 촛불집회에 참여한 예술인들 중 뜻이 맞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뭉쳐 설립한 단체다. 김 대표와 절친한 사이인 여 교수는 설립 당시부터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제는 100명에 달하는 대원들이 현장미술 활동을 통해 촛불 민중에 힘을 싣는다. 사진작가들은 촛불행동에 참여하는 국민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임시 천막 안에서 시국을 풍자하는 전시가 열리고 시민들이 모인 곳에는 공연 판이 벌어졌다. 경찰차의 차벽에는 국민이 직접 그림을 그린 현수막들이 붙어있고 곳곳에는 깃발이 휘날렸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 동상만이 덩그러니 놓여있던 광화문 광장은 비로소 제 기능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함께 생활하는 민주사회의 터전이 됐다. 촛불 시위가 추운 겨울에도 시들지 않고 평화적으로 지속되는 데에는 문화·예술이 큰 몫을 했다.
김준권 대표를 비롯한 여태명 교수 등 주축 멤버들은 모두 1980년대 민주화 항쟁에 활발하게 참여한 이들. 여 교수는 “당시 사회를 제대로 바꾸지 못해 이런 사태가 다시 벌어진 것 같은 미안함을 많이 느꼈다”면서 “시대를 안는 예술인의 사명감과 윗 세대로서의 책임감으로 다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촛불집회 초기에는 전주 풍남문광장에 나갔는데, 여기는 든든한 후배들이 충분히 제 역할을 하고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서 내 의지를 전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활동 시기는 박근혜 정권의 퇴진 후 구조 개선이 이뤄질 때까지. “대선보다 탄핵이 먼저”라고 강조한 그는 “누구 힘으로 대선 분위기가 만들어졌는가, 국민들이 일궈놓은 희망과 정의를 이용해 또 다른 소수의 기득권들이 이득을 봐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탄핵이 인용되면 촛불 민심이 줄어들 수 있는데 예술인들이 지켜보고,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다시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고 외쳤다.
도내 판화가인 유대수씨 역시 광화문 광장에서 판화 전시를 하는 등 광장의 또 다른 역사를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있다. 도내 전주 풍남문광장 등에서도 광장 문화는 이어지고 있다.
‘촛불’ 정의와 이를 작품에 새긴 예술인들은 새로운 광장 문화를 이끌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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