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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⑥ 춘풍이 전해온 매창과 황진이 - 이별이 애끓게 한 사랑…오늘도 사무치게 그립구나

▲ 부안읍 서외리에 있는 매창 묘.

봄이다. 향긋한 봄바람이 콧끝에 감긴다. 춘풍에 실려 온 남쪽의 매화소식은 마음을 설레이게 한 여인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 같다. 전주 한벽당 아래 바위에는 ‘매화향기를 찾아가는 소로’라는 뜻을 지닌 심매경(尋梅逕)이라 쓰인 암각서가 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기녀를 만나러 갈 때 ‘매화 향기를 맡으러간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였다는데 그 설렘을 표현한 길인 듯 싶다.

 

시대를 막론하고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는 마치 따스한 봄날의 햇살처럼 그 사연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내며 설레이게 한다. 전라북도에는 남원 광한루를 거닐었던 춘향이와 이몽룡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예향의 낭만을 만끽할만한 이야기가 여럿 전해져오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부안의 매창 이야기와 익산의 소세양이 사랑했던 황진이의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매창과 황진이는 재능과 기예가 출중해 조선시대 기녀문화를 대표하는 시와 사연을 많이 남겨 역사를 넘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여인들이다.

 

瓊花梨花杜宇啼 (경화이화두우제) 배꽃 눈부시게 피고 두견새 우는 밤

 

滿庭蟾影更悽悽 (만정섬영갱처처) 뜰 가득 달빛 어려 더욱 서러워라

 

相思欲夢還無寐 (상사욕몽환무매) 꿈에나 만나려도 잠마져 오지 않고

 

起倚梅窓聽五鷄 (기의매창청오계) 일어나 매화 핀 창가에 기대니 새벽닭이 울어라

 

가슴 한구석 설레임과 아련함을 동시에 전해주는 이 시의 주인공은 조선시대 중기에 부안에서 태어난 기녀 매창(梅窓, 1573~1610)이다. “평생에 동쪽 집에서 밥 먹는 것을 배우지 않고, 매화 창문에 달그림자 비낀 것을 사랑”하여 스스로 매창이라고 하였던 그녀는 그 이름만큼이나 봄날의 매화와 잘 어울리는 인물이다. 당대 유명한 기녀이자 뛰어난 시인이었지만 무엇보다 낭만적인 사랑을 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시조와 한시에 능했고, 노래와 춤은 물론 거문고 솜씨도 매우 뛰어났다 한다. 비록 기녀 신분임에도 몸가짐이 곧아서 손님들이 희롱하려 하면 곧잘 시를 지어 물리쳤다 전해진다. 실제로 그녀는 허난설헌, 황진이 등과 더불어 조선시대 손꼽는 여류시인으로서 주옥같은 시조와 한시를 남겼다. 현재 58수(매창의 시는 56수로 기록되어 있고 2수는 다른 이의 것으로 알려져 있다.)의 싯구로 구성된 <매창집> 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 한권은 미국 하버드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런 매창을 두고 <홍길동전> 을 지었던 허균은 “성품이 고결해서 기생이지만 음란한 짓을 즐기지 않았다. 내가 그 재주를 사랑해 거리낌 없이 사귀었다.”고 말했다.

▲ 매창집.

그런 그녀가 열렬히 사모하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천인 출신으로 당상관 벼슬까지 오른 뛰어났던 시인 유희경이 그 사람이다. 시와 거문고 연주를 잘한다는 부안의 기녀 소문을 듣고 찾아온 유희경과 만난 매창은 아름다운 시절을 보낸다. 이후 오랜 이별 가운데 서로를 그리워하다가 전주에서 짧은 해후를 갖기도 하지만 다시 유희경이 서울로 올라갈 수밖에 없게 되면서 두 사람은 영영히 이별하게 된다. 매창은 거문고를 안고 38세 젊은 나이로 죽을 때까지 유희경을 결코 잊지 못했고 유희경 또한 그러한 매창을 사무치게 그리워했다고 한다.

 

매 창

 

東風一夜雨(동풍일야우) 하룻밤 봄바람에 비가 오더니

 

柳與梅爭春(유여매쟁춘) 버들과 매화가 봄을 다투네

 

對此最難堪(대차최난감) 이럴 때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樽前惜別人(준전석별인) 잔을 앞에 두고 님과 이별하는 일

 

유희경

 

娘家在浪州(낭가재낭주) 그대의 집은 낭주(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아가주경구) 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상사불상견) 그리워 사무처도 서로 못보고

 

腸斷梧桐雨(장단오동우) 오동나무 비 뿌릴 제 애가 끊겨라

 

만남은 잠시이고 늘 헤어져있던 두 사람의 관계를 안타까워하고 그리워했던 유희경의 시 역시 이심전심 두 사람의 마음을 함께 전해주고 있다.

 

또 다른 주인공인 소세양(蘇世讓 1486-1562)은 조선시대 중기의 문신이다. 그는 전라도관찰사와 형조판서·우찬성·좌찬성·홍문관 대제학까지 두루 지낸 뒤 익산으로 은퇴한 명사였으며, 율시 등 각종 시문에 능한 문장가이자 송설체를 잘 쓰는 명필이기도 하였다. 한편으로 소세양에게는 강직하고 호기로운 면모도 있었다. 그가 젊었을 때 스스로 “여색에 빠지는 것은 사내라고 할 수 없다”고 자부하여, 당시 송도의 명월(明月)이라고 소문났던 기녀 황진이(黃眞伊)와 시한부 연정을 맺었던 일이 바로 그것이다. 소세양은 자신의 친구 앞에서 명월이 뜨는 날 명월 황진이를 만나 한 달 뒤 그 다음 명월이 뜨는 밤에 헤어지겠다는 약속을 한다. 당시 소세양과 황진이의 한 달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두 사람이 어떠한 생각으로 한 달을 함께 지냈는지 자세히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약속된 30일이 지나 소세양이 떠나려고 할 때의 시문이 전해져 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일임을 증언해준다.

 

月下梧桐盡(월하오동진) 달빛 아래 오동잎이 다 지고

 

霜中野菊黃(상중야국황) 서리 맞은 들국화만 노랗게 피었구나

 

樓高天一尺(루고천일척) 높은 누각 하늘과는 한 자 사이 맞닿았고

 

人醉酒千觴(인취주천상) 사람들은 취하는데 술은 천 잔이로다

 

流水和琴冷(류수화금냉) 흐르는 물은 거문고와 어우러져 서늘하고

 

梅花入笛香(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소리에 향기를 풍겨오네

 

明朝相別後(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서로 이별하고나면

 

情與碧波長(정여벽파장) 그리운 정은 푸른 물결처럼 길게 이어지리

▲ 익산 왕궁 용화리에 있는 소세양 신도비.

황진이가 읊은 시를 듣고 소세양은 “내 맹세한 대로,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고 하고는 며칠을 더 머물렀으며, 이후 익산에 내려와서도 황진이와의 짧은 만남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매창과 황진이의 이야기는 단지 기녀라는 이유로 자칫 가치가 훼손될 수도 있다. 기녀는 우리나라 오랜 문화예술사에서 예악을 담당하고 당대 예술을 선도했던 중요한 축이었음에도 겉으로 드러난 신분 탓에 이중적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기녀라는 직업을 연회에서 노래하고 춤을 추는 가무기(歌舞妓)와 매음(賣淫)을 업으로 삼는 창기(娼妓)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매창과 황진이와 같은 기녀는 시서가무를 전문으로 하는 예기(藝妓)로서 오늘날의 프로 예술인이었다. 따라서 이들의 사랑은 단순히 가십거리에서 벗어나 보편적이고 아름다운 사람의 이야기이며 그들이 남긴 자취와 글은 그 시대의 정서를 대변하는 예술적인 작품인 것이다.

 

그가 세상을 뜨자 인조 임금이 3일을 애도했다는 조선시대의 문신 신흠(1566~1628)은 “오동나무는 천년을 묵어도 늘 가락을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을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글을 남겼다. 그들에게서 풍겨났던 매화 향기는 그저 누군가를 이끄는 가벼운 유혹이 아니다. 추운 겨울을 이기고 봄이 찾아옴과 함께 풍겨내는 매화향의 고결한 자연섭리처럼, 그들만의 예술적 재능과 사랑을 그려내는 진심이 담긴 아름다움일 것이다. 전북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는 매창이, 익산시 왕궁면 용화리에는 황진이가 사랑했던 소세양이 잠들어있다. 이제는 사랑을 이야기해도 좋을 새봄, 매화 향기에 이끌리듯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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