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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의 자리

플라시도 도밍고는 루치아노 파바로티, 호세 카레라스와 함께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며 한 시대, 국가를 초월해 사랑과 존경을 받는 ‘세기의 거장’ 이다. 도밍고는 지난해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내한 공연을 가졌다. 일흔다섯 살, 모든 열정을 다 쏟아내는 노장의 무대에 7000석 객석을 가득채운 한국의 관객들은 기립박수로 화답했다. 여전히 풍부한 성량, 맑은 음색의 그의 노래는 그만큼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했다.

 

얼마 전 이태리에 거주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한 오페라 무대에서 활동하고 있는 소프라노 임세경 씨로 부터 인상 깊은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임씨는 지난 봄, 오스트리아 빈 국립오페라극장에서 플라시도 도밍고가 지휘하는 ‘토스카’ 무대에 섰다. 그의 말대로라면 공연을 바로 코앞에 두고 제의를 받은 ‘대타’ 무대였다. 세계적인 극장이기도 했지만 도밍고가 지휘하는 무대에 대한 기대가 컸던 그는 기꺼이 출연 요청에 응했다. 리허설을 위해 빈에 도착한 것은 저녁 시간. 연습실에는 도밍고 혼자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지막에 투입된 터라 동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공연 무대에 서야하는 상황이었으니 긴장이 됐다.

 

한국 출신 소프라노 가수를 홀로 맞은 도밍고는 활짝 웃으며 ‘새로 오는 토스카가 작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조그만 소프라노인 줄은 몰랐다’는 인사로 그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다른 가수가 한명도 없었으니 노래를 부르는 대신 리딩으로 진행할 수밖에 없는 리허설이었다. 그런데 도밍고는 리딩 대신 바리톤과 테너 역할의 아리아까지 부르며 그의 상대역을 도맡아 해주었다. 경황없이 진행된 첫 리허설이었지만 그 역시 모든 역량을 다 쏟아낼 수밖에 없었다. 도밍고는 한차례 더 리허설을 갖자고 제안했다. 국가를 넘나드는 도밍고의 공연 일정상 리허설 시간을 맞추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다음날 늦은 밤, 쉬고 있던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플라시도 도밍고’란 이름이 떴다. 극장으로 달려간 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물론 도밍고 혼자뿐이었다.

 

“도밍고의 이름만으로도 객석은 가득 찰 것이 틀림없는데,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른 공연까지 마치고 늦은 밤에 나이 어린 소프라노의 무대를 위해 다시 극장을 찾는 도밍고 선생님을 보며 깊은 감명을 받았다”는 그는 “거장의 자리는 결코 우연히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자신의 크고 작은 무대에 최선을 다하는 거장의 열정이 전한 울림은 또 있었다. 무대는 결코 혼자의 힘으로 빛을 낼 수 없다는 것. 서로를 도와야 비로소 제 빛을 내는 일이 어디 무대만의 것이겠는가.

김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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