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우내 세계의 시선이 한국에 쏠렸다. 북한 핵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한겨울 매서운 날씨에도 촛불을 들고 “박근혜 정권 퇴진”을 외친 우리 국민들을 향한 시선이었다. 우리보다 앞서 민주주의를 실현한 선진국들도 우리 국민을 경이롭게 바라보고, 존경을 표했다. 1925년 창립된 독일의 대표적인 정치재단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이 올해 인권상을 촛불집회 참여 시민에게 수여한 것이 대표적이다. 에베르트 재단은 “민주적 참여권의 평화적 행사와 평화적 집회의 자유는 생동하는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다. 대한민국 국민의 촛불집회가 이 중요한 사실을 전 세계 시민들에게 각인시켜 줬다”고 말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혁명이 있을까. 23차례에 걸친 촛불집회에서 1700만 명의 국민이 한 목소리를 외쳤다. 감히 국민이 부여한 통치권을 가지고 국정을 농단한 죄를 박근혜 정부에 물었다. 이 과정에서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았고, 불미스러운 사건이나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혁명이었다.
박근혜 정부를 심판한 촛불이 처음 타오른 지 1년이 지났다. 국민이 들었던 촛불은 박근혜 정부가 내려오면서 꺼진 양 과거형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과연 그런 것인가?
촛불집회에서 국민이 외쳤던 것은 분명 “박근혜 정권 퇴진”이었다. 그러나 저 짧은 구호에 들어있는 의미는 훨씬 넓고 깊다. 단지 박근혜 대통령만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다. 지난 정부가 국정농단의 수단으로 활용한 각종 ‘적폐’를 청산하라는 것이 국민의 근본적인 요구다.
국내의 정치적 경쟁세력을 견제하려 국정원을 이용하고, 비위에 거슬리는 연예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간첩을 조작해 만드는 등 자신들의 정권 유지를 위해 공권을 부당하게 이용하는 것이 적폐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권력기관이나 고위공직자가 불편부당한 방법으로 특혜를 누리는 것도 적폐다.
적폐의 가장 무서운 점은 오랜 기간 축적된 관성 때문에 당사자들이 부당하다는 것을 잘 체감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했던 건데 이번에도 크게 문제되겠느냐는 식으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위험은 진영을 가리지 않는다. 적폐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문재인 정부도 위험하다.
보수대혁신을 외치며 박근혜 정부와 결별을 선언하고 나온 바른정당의 대다수 의원들이 1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옛 새누리당으로 복귀했다. 10년도 아니고 1년 만의 일이다. 그리고 그들은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을 정치보복이라고 공격한다. 일부 언론은 이제 과거에 매몰될 것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며 에둘러 비판한다.
그런데, 국민이 과연 박근혜 대통령 하나에 대한 심판만으로 국정농단을 지난 일로 넘길 수 있을 것인가? 국민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 했던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다. 국정농단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난 추악한 적폐 행태들이다. 이것들을 그냥 두고 넘어가는 것은 미래지향도 화합도 아니다. 쓰레기가 썩고 있다면 쓰레기를 버릴 것이지, 그저 쓰레기통의 뚜껑을 덮을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오는 수고로움이 사라졌을 뿐이지, 촛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다. 촛불이 처음부터 태우고자 했던 것은 단지 지난 정권이 아니라, 적폐이기 때문이다. 적폐가 청산되지 않는 한, 촛불혁명은 끝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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