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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문화로 도시를 재생하다] ④ 프랑스 파리 12지구 프롬나드 플랑테·베르시 빌라주 (상) '공공성+상업성' 시민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되돌려주다

프롬나드 플랑테: 흉물된 고가 철도 폐선 부지에 꽃·나무 심어 산책로 탈바꿈…아치형 구조물엔 상가 조성 / 베르시 빌라주: 포도주 생산·물류 중심지역…교통 발달에 기능 잃었지만 영화관·식당 활용 후'활기'

▲ 프랑스 파리 동남쪽 12지구에 위치한 프롬나드 플랑테.

프랑스 파리는 가장 중심에 위치한 1지구를 중심으로 나선형(시계 방향)으로 총 20개 지구로 나뉘어 있다. 흔히 서울이 한강을 기준으로 구도시 강북과 신도시 강남으로 나뉘듯, 파리는 센강을 중심으로 구도시 동쪽과 신도시 서쪽으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12지구는 파리 동남쪽이다. 옛 고가 철도, 포도주 창고, 외곽순환도로 등이 혼재된 지역이었다. 세계 최초의 공중(空中) 정원 ‘프롬나드 플랑테’, 파리의 첫 쇼퍼테인먼트(쇼핑과 엔터테인먼트를 결합한 말) ‘베르시 빌라주’는 모두 이 12지구에 위치한다.

 

프롬나드 플랑테와 베르시 빌라주의 시간은 느리게 간다. 궁극적으로 파리 도시재생사업은 시민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되돌려줬다. 산책하고, 커피 마시고, 쇼핑하는 일상 말이다. 오래된 산업유산을 재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치단체와 시민이 의미 있는 논의와 협의를 도출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결과적으로 경제성뿐만 아니라 역사성과 친환경성도 담보하게 됐다.

 

특히 눈에 띈 점은 프롬나드 플랑테와 베르시 빌라주 도무 ‘공공성’과 ‘상업성’을 갖췄다는 것이다. 도시재생사업이 공공시설뿐 아니라 상업시설, 교육시설, 주거시설 등 실생활과 연계해 다양한 양상으로 추진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결국 도시재생사업은 ‘무엇을’ 만들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서 출발해야 한다.

 

△고가 철도가 공중정원으로, 프롬나드 플랑테

 

프롬나드 플랑테(Promenade Plantee)로 오르는 계단은 영화 <비포 선셋> 이나 사진 속에서 보던 분위기와는 달랐다. 이런 곳에 공원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계단이 끝나는 지점, 의문은 완벽히 불식했다. 푸른 나무와 알록달록한 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어 운동복 차림으로 조깅하는 사람들,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사람들, 데이트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프롬나드 플랑테는 지난 1859년 파리 12지구 바스티유 지역과 벵센 지역을 잇기 위해 지상 10m 높이에 건립한 길이 4.5㎞의 고가 철도다. 그러나 지하철 건설로 기능을 잃으면서 1969년 운 행이 중단됐다. 일부는 다른 노선에 통합되고, 나머지는 뾰족한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한 채 1980년대 중반까지 방치됐고, 흉물로 전락했다. 지상 10m 높이에 설치된 철길과 이를 지탱하기 위해 세운 아치형 구조물 64개를 철거하기 위해서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상황이었다. 건축가와 학생들을 중심으로 고가 철도 폐선부지와 기존 구조물을 재활용하자는 방안이 제기됐지만, 고가 철도를 리모델링한 사례가 없었던 만큼 명확한 청사진이 제시되지는 않았다. 그 사이 고가 철도 일대는 차츰 활력을 잃고, 범죄 위험이 도사리는 우범지역이 되면서 점차 슬럼화되었다.

 

프롬나드 플랑테가 빛을 보게 된 계기는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그랑 프로제’(Grands Project)였다. 미테랑 대통령은 1981년 취임 직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기념해 대대적인 문화예술시설 확충 프로젝트인 그랑 프로제를 발표했다. 오늘날 프랑스를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 오르세미술관, 미테랑국립도서관, 바스티유 오페라극장, 루브르박물관 유리 피라미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프롬나드 플랑테에서 시민들이 산책을 하는 모습.

이 과정에서 1984년 바스티유 역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바스티유 오페라극장을 건립하면서 인근 프롬나드 플랑테도 재주목받았다. 조경건축가 ‘자크 베겔리’와 건축가 ‘필립 마티유’는 폐선부지를 그대로 보존하면서 공중정원과 산책로를 조성했다. 길게 선형으로 뻗은 철로의 구조적인 특성을 최대한 반영해 정원마다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산책로는 각양각색의 꽃과 나무, 연못 등이 운치를 더한다.

 

특히 1㎞에 이르는 하단부 아치형 구조물 64개는 상점가로 개조해 ‘르 비아딕 데자르’로 탈바꿈했다. 건축가 ‘패트릭 베르제’는 붉은 벽돌 아치가 풍기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그대로 유지한 채 개별 상점가를 설계했다. 이 안에는 악기, 보석, 가구 등 수공예 예술가의 아틀리에와 매장, 갤러리, 카페, 레스토랑 등이 들어섰다. 도심의 골칫거리였던 고가 철도는 공원으로, 버려졌던 아치형 구조물은 문화예술 공간이자 상업공간으로 변신했다. 물리적인 재생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인 재생까지 이뤄낸 셈이다.

 

△포도주 창고가 쇼핑몰로, 베르시 빌라주

 

파리 12지구에 있는 ‘베르시 빌라주’(Bercy Village)는 2001년에 문을 연 쇼핑몰이다. 원래는 19세기까지 부르고뉴와 보르도 등에서 생산된 포도주를 저장하고, 이를 전국으로 공급하는 창고 밀집 지역이었다. 19세기 중반 이후 베르시 인근에 대한 개발이 추진되면서 지가가 상승했고, 창고는 외곽으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교통 발달로 소비자들도 생산지에서 직송으로 포도주를 받아보게 됐을 뿐만 아니라 포도주를 운반하던 기차 운행도 중단되면서 베르시는 포도주 물류 중심지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게 됐다.

▲ 베르시 빌라주.

파리는 포도주를 운반했던 철로와 철로 좌우로 길게 늘어선 포도주 창고 42개, 울퉁불퉁한 돌바닥 등을 그대로 보존했다. 포도주 창고는 1층의 문 2개, 2층의 창 1개, 삼각형 지붕 등 동일한 모양이다. 대부분 포도주 창고를 그대로 사용하고, 용도에 따라 창과 문을 유리로 개조한 게 전부다. 그 덕분에 과거 포도주를 저장하고 운반했던 마을 정취가 고스란히 남겨질 수 있었다.

▲ 베르시 빌라주 내 카페테리아에서 시민들이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

옛 포도주 창고에는 대형 영화관을 비롯해 유명 의류·화장품·액세서리 상점, 레스토랑, 카페 등이 들어섰다. 낮에는 파라솔을 설치해 카페테리아로 활용한다. 인근에는 아름다운 호수로 꾸며진 베르시 공원과 특색있는 조각상들이 자리한다. 주민들이 가꾸는 정원과 과수원도 있다. 파리의 첫 ‘쇼퍼테인먼트’로 파리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가족 단위 이용객이 많이 찾는 인기 장소다. 식사와 와인을 즐기는 사람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벤치에 앉아 책 읽는 사람들, 산책하는 사람들, 쇼핑하는 사람들. 베르시 빌라주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이다. 관광객보다는 파리 시민들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누리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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