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으로 한 없이 부드럽고 안으로 금강석처럼 단단했던 당신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주변의 후학들을 다사롭게 보듬고 격려했던 당신의 모습을 이생의 이별 마당에서 다시 되새겨봅니다.
빈 것 같으면서도 안으로 가득 차있는 당신의 그 모습이 그립습니다. 치열성과 정치함에서는 한 치의 틈도 허락지 않았던 당신 글을 후학들은 기억합니다. 그 엄정함은 해성고등학교 재직 시절 동료 교사들에 의해 소문이 났습니다.
교과서의 오류를 낱낱이 파헤쳐 잘못된 내용들을 바로잡아야 함을 당신은 단호하게 주장했습니다. 그것들을 「전북신문」에 실어 당시의 화제인물로 부상했던 그 추억을 동료 선후배들이 당신을 보내는 자리에서 증언하며 아픈 가슴을 달래고 있습니다.
외유내강과 허허실실, 그리고 박람강기가 당신의 삶을 떠받친 세 개의 기둥이었습니다. 당신의 넓고 깊은 지식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원광대로 자리를 옮겨 학문의 세계에 매진할 때, 고등학교 교과서의 오류를 파헤쳤던 그 열정과 집념이 결집된 저서가 『한국 현대시 해석의 오류』(2003)입니다. 이 책은 한국문학의 대가들이 확고부동하게 내린 시문학 작품의 해석상의 오류를 바로잡는 보기 드문 저서에 속합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에 비유된 오하근의 박물학적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작업이었음을 후학들은 뒤늦게 이 책을 읽고 깨달았습니다. 이 저서 하나만으로도 여러 선배 동료들이 전설처럼 이야기했던 ‘살아 숨 쉬는 인간 백과사전 오하근’이라는 말을 실증했습니다.
스승 천이두 선생과 원광대 국어교육과에서 강의를 마치고 춘포에 들러 한 두병의 소주로 인생의 애환을 토로하고 동서양의 문학을 논하며 당신은 소박한 풍류를 즐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당신은 학문을 위한 정진의 자세를 흐트린 적이 없었습니다. 이 시대의 드문 학자였던 당신의 진면목이 『원본 김소월전집』(1995), 『정본 김소월전집』(1995), 『김소월 시어법 연구』(1995), 『전북현대문학 상하』(2010)에 나타나 있습니다. 학문적 구도의 정신적 열기가 빚어낸 이 저서들은 한국근대문학의 성과로 기록될 것입니다.
유유자적해야 할 그 시기에도 당신은 작고문인들의 자료 발굴과 문학사적 의의에 주목해 왔습니다. ‘소멸기 한문문화의 문화사적 위상’을 조명한 오연호 선생의 문집 발간이 그것입니다. “종질인 하근河根이 유고를 발견하고, 당신이 몸으로 살았던 한문학 소멸기의 귀중한 자료”(오해걸, 「후기-아버님 문집 발간에 즈음하여」)로 활용될 수 있으니, 이를 공개하자고 당신이 권하여 이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어느 선각자의 도전과 좌절」이라는 글 또한 한국문단에서 잊혀진 부안의 인물 백주 김태수의 작품집을 새롭게 주목한 최초의 평론에 해당합니다.
“당신께서 무한 시공으로 떠나자 하늘도 초목도 통곡”한다고 이운룡 시인이 애도합니다.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응어리진 육신의 고통을 이생에 부려놓고 훨훨 허허롭게 가벼운 몸짓으로 하늘나라 가셔서 스승 천이두 선생과 해후하는 기쁨 누리소서.
‘타고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된다’는 만해 선사의 시 구절이 떠오릅니다. 당신이 온몸으로 태웠던 학문과 삶의 타고 남은 그 재가 다시 기름이 되어 활활 우리 가슴 속에 타오를 것을 믿습니다.
부디 편히 가소서. 아픈 가슴 추스르며 당신이 못다 이룬 이생의 꿈 활짝 피울 것을 우리 모두가 다짐하며 작별의 인사 올립니다. 전정구(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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