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부터 파리 동부지역 재생…냉동고·방앗간·밀가루창고 등 옛 건물 살려 예술공간 등으로 / 파리도시계획연구원 APUR "정기적인 설명회·교육 통해 주민에게 구체적 비전 제시"
프랑스 파리는 1960년대 주거난과 도시 근대화로 대규모 재개발 방식이 도입되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그러나 1960년대 말 이에 대한 반성이 일면서 도시개발 방향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기에 이른다. 이와 관련 1967년 파리도시계획연구원(APUR)을 설립했다. APUR은 도시 전체에 대한 현황 조사와 구조 분석 등을 토대로 새로운 도시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1980년대부터 ‘동·서부 지역 균형 발전’ 전략으로 우선협의정비지구(ZAC)를 지정해 주거지 개발, 문화시설 건설 등을 추진했다. 시트로엥 지구, 베르시 지구, 리브고슈 지구 개발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개발들은 과거 공업지역인 파리 동쪽 이미지를 쇄신하는 데 일조했다.
특히 리브고슈 지구는 철도 용지를 활용해 기존 교육, 주거, 문화, 상업 등 복합 기능을 갖춘 지역으로 재생한 사례다. 리브고슈 지구 개발 주체는 파리시이나, 실질적인 업무는 파리개발공사(SEMAPA)가 맡았다. 1985년 조직된 민관혼합회사로 건축, 재정, 기술, 법률, 부동산 등 각 분야 전문가 50여 명으로 구성돼있다. 파리개발공사가 건축사 선정·건축 인허가·디자인 가이드라인 제시 등 사업 전반을 기획하고, 유명 건축가 7명이 리브고슈 지역을 7개로 분할해 디자인하는 방식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했다. 이 리브고슈 지구 개발을 통해 파리 13지구는 기존 건물과 신축 건물이 조화를 이룬 색다른 파리 풍경을 창조해냈다.
△옛 건물의 재발견…대학 캠퍼스, 창작예술공간
버려진 냉동 창고에서 창작예술공간으로 변모한 ‘레 프리고’. 레 프리고 일대는 마치 영역 표시를 하는 듯 자유분방한 그라피티로 가득 채워져 있다. 6층 규모 콘크리트 건물은 예술가들의 대형 컨버스와 같았다. 벽은 물론 바닥, 복도, 계단 등 모든 곳이 그들에게는 표현 창구였다.
레 프리고(les frigos)는 프랑스어로 냉동 창고라는 뜻이다. 세계대전 중 음식물을 보관하기 위해 건립한 건물로 1945년 프랑스 국영철도(SNCF) 소유가 됐으나 1970년대 초반 문을 닫게 됐다. 빈 곳으로 화가, 사진가, 건축가, 조각가, 음악가 등 예술가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이들은 무단 점거를 지속하면서 창작 활동을 이어나갔다. 1985년 철거 논의 등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파리 동부개발협회, 임대인협회의 노력으로 철거를 막아냈다. 2003년 파리시 소유로 전환돼 예술가 200여 명이 파리시에 임대료를 내면서 합밥적으로 거주하게 됐다.
레 프리고는 1년에 두 차례(6월과 9월) 건물 내부와 아틀리에를 공개한다. 이 기간에는 공동으로 전시와 교육, 판매 등을 기획해 일반 시민과 함께 장소를 공유한다. 레 프리고는 단순한 창작예술공간이 아닌, 그 자체로 특별한 전시 공간이 되었다.
이외에도 13지구 내에는 버려진 건물을 활용한 사례가 많다. 파리7대학 ‘그랑 물랭’은 방앗간을, ‘알 오 파린’은 밀가루 창고를 개조해 대학 캠퍼스로 활용했다. 건물 이름도 당시 이름을 그대로 표기했다. 그랑 물랭은 1921년, 그랑 물랭에서 생산한 밀가루를 보관하는 창고인 알 오 파린은 1950년 세워졌다. 그랑 물랭은 1996년 제분소 기능이 파리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문을 닫았다. 이후 두 건물은 2006년 리모델링을 통해 파리7대학 캠퍼스 건물로 재탄생했다. 또 1897년 건립된 압축기 공장은 파리 발드센 건축학교로 변신하기도 했다.
△파리 랜드마크가 된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13지구에는 파리 랜드마크인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이 있다. 1368년 세워진 세계 최초 민간 도서관으로 1692년 일반인에게 개방됐다.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1988년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맞아 전신인 국립도서관을 세계에서 가장 크고 멋진 현대식 도서관으로 재정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건축가 ‘도미니크 페로’가 설계를 맡았다. 파리 센 강변에 위치한 이 도서관은 펼친 책 모양을 형상화한 건물 4동(22층 규모)이 귀퉁이에 하나씩 자리 잡고 있다. 그 사이에는 정원을 조성했다. 도서관 하단 열람실은 유리로 구성해 마치 숲속에서 책을 읽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후 도서관 주변에는 새 이름을 단 길이 조성되고, 길 양옆으로 대형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갤러리들이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파리도시계획연구원(APUR) ‘지역 간 빈부 격차 해소’ 주안
파리도시계획연구원(APUR)은 파리에서 추진하는 도시 개발, 공공공간 정책을 기획·연구하는 기관이다. 파리뿐만 아니라 파리 근교까지 관할한다. 상하수도와 전기, 철도, 지하철 회사 등은 1년 한 차례씩 정기 회의를 열고 도시가 직면한 문제를 짚어보고, 해결 방안을 공동으로 마련한다. APUR은 이를 반영해 도시 개발 계획을 수립한다. 현재 파리 근교까지 포함한 도시 개발은 80% 가까이 완료된 상태다.
2000년대 이후 파리 도시개발은 동서부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도시 균형 발전, 공공공간 및 공공시설 확충을 통한 공공서비스 향상, 사회 취약지구에 대한 정비 등이다. APUR도 ‘동서부 지역 균형 발전’을 골자로 도시개발은 추진한다. 이와 관련 파리 동남부 13지구 인구 유입을 위해 의도적으로 공공기관이나 프랑수아 미테랑 국립도서관, 파리7대학, 파리 발드센 건축학교 등 교육기관을 이전하기도 했다.
특히 APUR 줄리앙 직켈(Julien Gicquel) 국제활동담당자는 부자나 빈자가 ‘공존’하는 도시를 강조했다. 그는 “고급주택과 서민주택을 분리한 도시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며 “한 건물 안에 고급주택, 서민주택, 상가시설 등을 묶어 개발하는 방식으로 도시 내 ‘조화’를 추구한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교육기관 이전도 큰 맥락에서 보면 빈부 격차 해소책이다. 또 파리 도시개발은 주민이 거주하는 공간을 직접 설계하는 사례는 드물다고 했다. 빈 부지나 건물을 활용해 상업시설 30%, 공원·도서관 등 주거 시설 30%, 서민주택 30%를 기준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다.
그는 “도시는 시대적 산물이므로 지역의 역사와 건물의 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도시 개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며 “정기적인 설명회나 교육 등을 통해 지역 주민에게 구체적인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끝>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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