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가져다 준 / 완산초 교지로 시 처음 접해 / 시의 근본은 '감동' / 통찰력 가져야 좋은 시 탄생
중산 이운룡(80) 시인은 시를 ‘놓치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쓴다. 축적된 경험을 한꺼번에 시 수십편으로 와르르 쏟아내는 그의 시작 습관 때문이다. 그는 두문불출하면서 시를 붙잡고 수없이 수정한다. 그러고 나면 그 시를 잊어버린다. 그제야 다음 시를 쓸 기회가 생긴다. 등단 이후 53년간 발표한 작품만 시 866편이다. 올해만 해도 69편을 썼다. 내년에 시집 단행본 출간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시인의 성장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7일 전북문학관에서 열린 ‘전주 백인의 자화상 인문 콘서트’는 이운룡 시인과 오랜 세월 친교를 맺은 문인들이 참석해 그의 삶과 문학을 공유했다. 소재호 전 석정문학관장, 송희 시인, 이재숙 시인(열린시창작교실 지도교수) 등이 무대에 올랐다.
문인들은 ‘시인’이기 이전, 이운룡에 대해 듣길 원했다. 그는 어머니 젖을 함께 먹고 자란 친구가 가져다준 완산초 교지로 시를 처음 접했다고 한다. 제목이나 작자도 모르지만 ‘하늬바람 불어오면 전봇대는 쓰르릉 피리 불고요’라는 한 구절은 또렷이 기억한다.
6·25 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 비행기 조종사, 양돈 사업가라는 꿈을 꾸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시인이 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영토동인’을 구성해 매주 자작시로 토의했다. 졸업을 앞둔 시점에는 신석정 선생의 서문을 받아 습작시집 <황무지> 를 발간하기도 했다. 수업료 미납으로 졸업장조차 받지 못하고,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전북대 국문과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날들도 있었다. 황무지>
그는 대학교 2학년 때 경북대 주최 제5회 전국대학생문예작품 현상공모에 응모해 당선되고, 1964년부터 1969년까지 <현대문학> 잡지를 통해 김현승 시인으로부터 총 3번 시를 추천받아 꿈에 그리던 시인이 되었다. <월간문학> 에 김현승 시인의 시를 분석한 평론으로 시와 평론을 겸한 문학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이운룡 시 전집 1·2> 등 시집 17권, 시론서 및 문학이론서 <직관 통찰의 시와 미> 등 11권을 발간했다. 직관> 이운룡> 월간문학> 현대문학>
이 시인은 좋은 시를 쓰는 조건에 대해 “시는 참을 수 없는 웃음과 울음의 생으로부터 온다”며 “의식·의도적으로 시를 쓰려고 노력해야지 시가 오길 기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의 본질, 시인의 자세에 대해서도 말했다.
“시는 의식 속에 존재하는 세계입니다. 시적 진실과 일반적 진실은 다릅니다. 시적 진실은 정서적 진실이지 사실적 진실이 아닙니다. 시는 이 시적 진실로 감동을 주지요. 시 근본은 ‘감동’입니다. 이를 위해 시인은 나비 숨소리도 듣고, 개미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는 미세한 감각이 있어야 합니다. 우주를 한 눈으로 보고 한꺼번에 말할 통찰력을 가져야만 좋은 시를 쓸 수 있습니다.”
중학교 교사, 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양성한 그는 시를 쓰고자 해도 길을 찾지 못하는 문학도를 위해 1989년 열린시문학회를 창립하고 시창작교실을 개설했다. 2011년까지 무려 22년을 지도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전북 문인 33인이 참여한 표현문학회를 조직하고, 1979년 문예지 <표현> 창간호를 발간하기도 했다.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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