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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엘리트의 논리

창의시대 사는 미래에 공익적 가치가 큰 예술 우린 꼭 간직해야 한다

▲ 장세길 전북연구원 문화관광연구부 연구위원

며칠 전부터 보수의 논리가 궁금해 인터넷을 뒤졌다. 그러다 2017년 6월 23일에 열린 한 토론회에서 보수주의를 설명한 서울대 박지향교수의 자료를 찾았다.

 

박교수가 말하는 보수이념은 간단명료했다. 첫째, 인간은 비이성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존재다. 그래서 법에 의한 정치가 필요하다. 둘째, 세상은 불평등한 유기체다. 어떤 사람은 머리, 어떤 사람은 팔이나 다리가 된다. 다만 머리, 팔, 다리 모두가 소중하다. 셋째, 제도나 법, 관습은 뭔가 좋기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살아남은 역사, 전통, 제도를 존경해야 한다. 잘못된 것을 고쳐나가되 기본 틀은 유지해야 한다.

 

엘리트는 능력으로 좌우된다. A학점을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도 해야 하지만 ‘잘’해야 한다. 잘하기 위해서는 타고난 재능이 필요하다. 엘리트가 되지 못하게 태어난 약자는 공정한 게임으로 보살펴야 한다. 이것이 보수이념이란다.

 

보수의 논리에서 조건과 결과는 불평등하다. 보수가 추구하는 평등은 기회의 평등이다. 풀어보면, 타고난 재능으로 살아남아 불평등한 결과를 누려라, 결과가 불평등하다고 불만을 갖지 마라, 기회가 평등했으니, 이 말인 것 같다.

 

『왜 예술가는 가난해야 할까』라는 책을 쓴 한스애빙은 예술가이자 경제학자다. 그는 예술가가 가난한 많은 이유 중에서 공급과잉현상을 핵심으로 꼽는다. 승자독식이 주는 장밋빛 환상에 이끌려 예술가지망생이 대거 몰리고, 이 때문에 가난한 예술가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는 국가가 예술가를 지원하면 시장에 관심을 갖지 않는 예술가가 늘어나게 되고 결국 국가지원이 예술가의 경쟁을 왜곡시키며 빈곤현상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한다.

 

그가 내놓은 답은 시장이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국가가 지원하지 않아도 예술은 신화적이기 때문에 헌신하는 예술가는 생겨난다. 국가가 지원하니 재능이 없는 사람들이 예술을 하겠다고 덤빈다. 국가가 지원을 끊고 시장에 맡겨 놓으면 밥벌이가 안 되는 예술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이 줄고, 공급과잉이 해소된다. 재능이 없다면 예술가가 되지 말라. 그래도 예술을 하겠다면, 경쟁력을 키워 시장에서 살아남아라.

 

박교수가 말하는 보수이념과 딱 들어맞는다. 예술적 재능이라는 조건은 불평등하다. 기회는 균등하게 주어진다. 다만 시장에서. 결과는 당연히 불평등하다. 기회가 균등했으니 결과가 불평등하다고 불만을 가질 일은 아니다. 예술적 재능이 없다면 다른 일, 즉 머리 말고 팔과 다리가 되라고 충고한다. 시장에서 살아남아 서울대 교수가 되고, 예술가이자 경제학자가 된 보수엘리트로선 당연한 논리다. 정말 공정한 게임인가는 감춰진 채.

 

사라져가는 소수민족의 언어, 낡은 것으로 내몰린 전통문화, 경제논리에 사라지는 인문학, 박교수의 논리라면 뭔가 좋지 않기 때문에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박교수가 전공한 서양사학도 인문학인데, 자신의 학문이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나? 보수엘리트의 논리는 결국 ‘살아남은 강한 자들’의 논리다.

 

예술을 시장에 맡기자는 한스애빙의 결론은 무책임하고, 예술은 그래도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은 일방적이다. 그럼에도 한스애빙의 주장에 빗대어 예술인복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여전하다. 시장에 맡겨 살아남는 예술이 있지만 살아남지 못할 예술이 있다. 시장에 살아남지 못하는 예술 중에는 꼭 간직해야할 문화적, 정신적 가치를 지닌 것이 많다. 더욱이 예술은 공익적 가치가 크다. 창의시대를 사는 미래세대에게는 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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