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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춘포면 농부의 30년 일기

이복규 교수

▲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표지.

“작년 섣달경이었다. 아내가 감기 들었다고 늘 신음하면서도 여전히 돌아다녔다.”

 

이춘기(1906∼1990) 씨의 30년(1961∼1990) 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이춘기 씨는 부인 김정순 씨가 발병해 입원할 무렵인 1961년 1월 1일부터 아들을 따라 미국에 이민 가 사는 1990년 11월 11일까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일기를 썼다. 빠진 날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채워 넣었다. 자신의 삶을 역사로 남기려는 강렬한 기록 정신이 느껴진다.

 

이 일기를 서경대 문화콘텐츠학부 이복규 교수가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로 엮어냈다. 출판사(학지사)의 요청으로 2014년 일기를 접한 뒤, 3년 만에 내놓은 결과물이다.

 

이춘기 씨는 전주신흥학교를 졸업하고 익산시 춘포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면서 살다 말년에 미국으로 옮겨 그곳에서 1년 만에 86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이춘기 씨가 쓴 일기는 부인의 발병과 죽음, 여러 달에 걸쳐 구완하느라 기울어 버린 살림, 혼자 복숭아 농사를 지으면서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의 어려움, 노년에 미국으로의 이민 등이 주요 내용이다. 특히 아내에 대한 그리움, 남겨진 막내아들에 대한 부성애는 자주 반복되어 읽는 이를 뭉클하게 한다.

 

이밖에도 세시풍속, 여가생활, 기독교 신앙생활 등이 포함돼 있다. 세시풍속 관련 정보는 민속학적으로도 의의가 있다. 마을 웃어른에 대한 세배와 꽃 주일(flower sunday)의 쇠퇴·소멸, 대보름 공동체 제의의 약화 등이 눈에 띈다. 일제강점기 말의 공출, 3·1 운동, 6·25 한국전쟁 등 우리 현대사의 중요 사건에 대한 회상도 소중하다. 사전에 나오지 않는 익산지역의 속담, 관용 표현, 방언도 흥미롭다.

 

이춘기 씨는 버스나 차를 탄 시간, 품삯이나 물건값 등도 일일이 밝혀 놓았다. 직접 그린 삽화를 곁들였다. 일기는 시, 수필, 기행문, 회고록, 메모 등 다양한 갈래를 포괄한다. 어떤 날의 일기는 장편이기도 하고, 일기에 대한 서술도 나온다.

▲ 고 이춘기씨의 1961년 5월 4일 목요일 일기 ‘아내 생각’.

제1부(1961년 일기)와 제2부(1962년 일기)는 부인이 발병해 투병하다 작고하기까지의 과정, 사별 후 혼자 어린 두 아들을 돌보다 힘이 들어 재혼했다 실패한 사연을 담았다. 제3부는 나머지 28년의 일기에서 가족, 세시풍속·기념일, 노년과 관련 있는 것만 발췌 재편집해 실었다. 이 교수는 한자의 한글화, 방언의 표준어화를 제외하고는 최대한 원형을 유지하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일기마다 제목을 달아 읽는 데 편리하게 했고, 맨 뒤에는 부록으로 이춘기 선생의 약력과 가족 상황 및 해설 글을 실었다.

 

이복규 교수는 “하루하루를 금쪽같이 살다 가신 분의 눈길을 따라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의 세월을 여행하고 나니, 마치 또 하나의 인생을 살아 낸 것만 같았다”며 “아버지 연배 되는 분의 기록이라서, 평생 농부로 살다 가신 내 아버지의 삶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해 더욱 애틋했다”고 말했다.

문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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