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충과 연신이 말머리를 나란히 하고 사비도성의 후부(後部) 상항(上巷)거리를 지나고 있다. 폭이 1백자(30m)가 넘는 대로(大路)에는 행인이 가득 찼다. 행인 중에 왜인과 당인(唐人), 남만인, 인도인까지 섞여 있었는데 당시의 백제는 해상 무역의 중심이었고 인도까지 해상 무역로가 개척되었기 때문이다. 가끔 고구려 상인도 지났으므로 윤충의 얼굴에 쓴웃음이 띠어졌다.
“요즘은 고구려 배가 많이 들어온다고 하더군.”
“예, 하지만 아직 뱃길이 서툴러서 우리 상선단에 끼어서 갑니다.”
남만을 거쳐 인도까지 가려면 항해술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도중의 길목에 자리잡은 백제령 담로에서 물과 양식을 조달받고 배도 수리해야 된다. 옆을 지나던 후부(後部) 순시군(軍)이 윤충을 향해 군례를 했다. 사비도성은 부소산성 밑의 왕궁 아래로 바둑판처럼 조성된 거대한 성안 거리로 이루어져 있다. 나성(羅城)으로 둘러쌓인 도성은 5부(部) 5항(巷)의 행정체제로 편성되었는데 상(上), 전(前), 중(中), 하(下), 후(後)의 5부에 각각 5항으로 나뉘어진 것이다. 도로는 모두 직선이며 각 부에는 5백명의 군사가 주둔하여 치안과 방어를 맡았다. 도성 안의 가구 수는 1만가(家)가 되었으니 인구 10만이 넘는 거도(巨都)다. 윤충이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적의 적은 우군(友軍)이지만 언제 또 적이 될지 알 수가 없는 세상이지.”
백제와 고구려는 근래에 들어 동맹관계나 같다. 신라 진흥왕대에 한수유역의 거대한 영토를 빼앗긴 고구려는 절치부심하여 기회를 노렸으며 백제 또한 같은 입장이다. 신라와 연합하여 한수땅을 빼앗았지만 곧 신라의 배신으로 한수유역 6개군(郡)을 빼앗긴데다 성왕(聖王)까지 관산성에서 신라군에게 패사(敗死)했기 때문이다. 그때 윤충이 연신에게 말했다.
“덕솔, 아무래도 올해 안에 다시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
연신은 대답 대신 말몸을 바짝 붙였고 윤충의 말이 이어졌다.
“이번 대야성 공격이 성공하면 신라는 극심한 내분이 일어날 거야.”
“허나 대야성이 만만치 않습니다.”
주위를 둘러본 연신이 목소리를 낮췄다.
“김품석이 지용(知勇)을 겸비했을뿐만 아니라 보유한 군사가 2만이 넘습니다. 수성(守城)만 한다면 장기전이 될 것이오.”
“대왕께선 기어코 김춘추 세력을 꺾으실 작정이야.”
연신이 길게 숨을 뱉었다. 작전은 극비로 진행되고 있다. 대왕은 방령 윤충만을 불러 명을 내리는 것이다. 연신이 윤충에게 물었다.
“방령께서 계백을 부르시는 이유가 기마군 장비 때문입니까?”
“전령을 통해 기밀이 새나갈 수도 있어.”
“그렇지요.”
“계백에게 대야성 정찰을 시키려는 것이네. 대왕께서 계백을 기마군 선봉으로 세우실 계획이야.”
연신은 입을 다물었다. 의자왕은 효자다. 죽은 부친 무왕(武王)의 염원을 잊지 않고 있다. 어디, 관산성 싸움에서 패사한 성왕의 한(恨)뿐이겠는가? 무왕(武王)의 부인이며 의자왕의 모친은 진평왕의 둘째딸 선화공주인 것이다. 신라 진평왕은 딸만 셋을 두었는데 첫째가 덕만(德萬)이요, 둘째가 선화(善花), 셋째가 천명(天明)이다. 현재의 신라여왕 선덕이 바로 덕만이요. 선화는 의자왕의 모친, 천명은 곧 김춘추의 생모가 된다. 신라 성골(聖骨)·왕족은 이 셋 뿐이니 선덕여왕 다음 순위가 누가 되겠는가? 김춘추? 의자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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