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후로 나갔던 군사가 앞쪽 산비탈에 세워진 석성(石城)을 가리키며 말했다. 3리(1.5km)쯤 떨어진 석성은 산비탈에 10자쯤 높이의 성벽을 세웠는데 규모가 꽤 컸다. 더구나 동쪽으로 통하는 길목에 세워져서 요지(要地)다. 이곳은 신라 대야주의 서쪽 지역으로 대야성으로 통하는 길목인 셈이다. 계백이 옆에 선 장덕 해준을 보았다.
“우리가 이틀이나 이 근처를 정찰했으니 성 안에 기별이 갔을 거네.”
“당연하지요.”
해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주민들의 눈에 띈 적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이미 전령이 대야성으로 갔다고 봐도 될 겁니다.”
“이곳에서 대야성까지는 1백리가 조금 넘는다. 머리를 든 계백이 저물어가는 해를 보았다. 정찰 나흘째가 되는 날이다. 위력정찰이어서 예비마와 군량을 실은 치중대까지 포함한 8백여필의 말떼가 휩쓸고 지나는 것이다. 거침없는 행보여서 대야주 서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앗, 성에서 기마군이 나옵니다!”
앞에 선 척후병이 소리쳤기 때문에 계백이 시선을 들었다. 과연 성문에서 기마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먼저 붉은색의 깃발을 창에 매단 기마군 2명이 달려 나오더니 뒤를 한무리의 기마대가 따른다. 30기 정도다.
“정찰대입니다. 나솔.”
해준이 말고삐를 감아쥐며 계백을 보았다. 두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살기(殺氣)다. 그것을 본 계백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전장에 익숙해지면 저절로 몸이 반응한다. 장수의 명령에 앞뒤 가리지 않고 덤비는 군사가 바로 강군(强軍)이다.
해준이 바로 그렇다. 계백이 눈을 좁혀 뜨고 정찰대를 응시했다. 뒤를 따르는 후속군이 있는가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문은 열어놓은 채 30여기가 전속력으로 이쪽을 향해 달려왔다. 이쪽은 20기다. 계백이 본군(本軍)을 뒤쪽 골짜기에 둔 채 정찰대를 이끌고 온 것이다.
“저놈들도 우리 뒤에 본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해준이 앞발로 땅을 긁는 말 목을 쓸어 달래면서 말했다. 싸움에 익숙한 말이어서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계백이 입술 끝을 비틀며 웃었다.
“우리가 5백기로 위력정찰을 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는 거야.”
“그렇습니다. 성문을 열어놓고 있는 것도 본대가 오면 지원군을 내보내려는 의도올시다.”
“그럼 우리가 저놈들을 맞지.”
“소장이 먼저 나가지요.”
“그럴 필요없어.”
말안장 옆에 매어놓은 각궁을 빼내면서 계백이 둘러선 기마군에게 소리쳤다.
“일직선으로 달려 적과 부딪친다.”
계백의 목소리가 주위를 울렸다.
“내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종대로 바짝 붙어 내달린다. 알았느냐!”
“옛!”
군사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때 해준이 소리쳤다.
“소장이 맨끝을 맡겠소!”
“놈들을 돌파하는 즉시 말머리를 틀어 돌아온다. 따르라!”
말을 마치자마자 계백이 박차를 넣어 앞으로 내달렸다. 뒤를 기마군 20기가 따른다. 말몸 하나의 간격을 두고 한줄기 종대로 서서 달려가는 것이 화살이 날아가는 것 같다. 삼현성에서 나온 신라군과의 거리는 어느덧 5백보로 가까워졌다. 양쪽이 서로를 향해 달려오는 터라 거리는 급속도로 단축된다. 350보. 300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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