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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르네상스 꿈꾸는 청년들] ④윤지은 너멍굴영화제 집행위원장 - '헬조선'서 허우적대던 청춘, 완주서 일내다

귀농 대학동기따라 귀촌 / 친한 이끼리 영화제 기획…예상밖 호응, 매년 열기로 / "경쟁사회에 젖어있던 나 함께하는 즐거움 배워…취업난 고통 청년들 이곳에서 숨통 좀 트이길"

▲ 윤지은, 진남현, 허건 씨를 비롯한 ‘너멍꾼’(영화제 집행부)들이 지난해 여름 축제를 준비하던 모습.

윤지은(30) 씨가 친구 따라 강남 아닌 완주에 정착한 것은 지난해 초. 2016년 완주 외길 마을로 귀농한 대학 동기인 진남현 씨를 따라서다. 진 씨의 좌충우돌 농촌 생활에서 ‘완주’라는 도시의 매력과 가능성을 봤다. 취업난에 몸도 마음도 지친 윤 씨에겐 29년 만에 처음 온 미지의 땅은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기회였다.

 

△ ‘불편하지만 편안한’ 너멍굴 영화제

▲ 지난해 9월 완주 귀농 청년 진남현씨의 텃밭에서 열린 제1회 너멍굴 영화제. 완주 안팎에서 온 관객들이 돗자리가 깔린 텃밭에서 자유롭게 영화 감상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완주 고산면에 위치한 골짜기, 가끔 고라니와 멧돼지가 찾아와 외식도 하고 간다는 ‘너멍굴’에서 특별한 일이 벌어졌다. 낯선 청년들이 여름 내내 텃밭에 고인 물을 빼고 땅을 평평하게 다지더니 대형 스크린과 텐트가 들어섰다. 윤지은, 진남현, 허건 씨 등 12명이 개최한 ‘너멍굴영화제’였다.

 

‘#독립영화 #텐트촌 #프로불편러 모집 #불편한 영화제’. 대놓고 ‘불편한 영화제’임을 홍보했는데 오히려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완주 안팎에서 SNS 홍보글을 보거나 입소문을 듣고 관객 100여 명이 너멍굴을 다녀갔다. 마을 어르신들도 오랜만에 찾아온 떠들썩함에 궁금함을 품고 찾아왔다.

 

“사실 우리가 재밌자고 시작한 거였어요. ‘망하면 어때. 젊으니까’라는 정신으로 패기 있게 시작했습니다. 관객이 올까? 지인 30여 명이나 오겠다 싶었죠. 이렇게 많은 분이 찾아오고 좋아할 줄 몰랐어요.”

 

바람이 불면 머리가 흩날리고 비가 오면 그대로 맞아야 하는 야외 상영장이었다. 사실 허허벌판에 대형 스크린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꼴이니 상영장이라고 칭하기도 다소 민망하다. 그런데 관객들은 무척 좋아했다. 몸은 불편하지만 마음은 더 편하다고 했다.

 

윤 씨는 “텐트를 치고 자연 속에서 여유롭게 영화를 보는 게 요즘 도시 사람들에게 새롭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인위적이지 않은 진짜 휴식을 누리고 간다고 하더라고요.”

△ ‘흙수저’ 청춘의 패기, 인정받다

 

가장 먼저 완주에 내려와 토대를 다진 진남현 씨가 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고, 영화감독을 꿈꾸는 허건 씨가 영화를 섭외하는 프로그래머를 맡았다. 전반적인 기획과 실무는 윤지은 집행위원장이 진두지휘했다. 이 외에 김다정, 김다래, 조재근, 권익현, 김솔지, 조은미, 고광재, 김현지 씨가 너멍꾼(영화제 집행부)으로 힘을 더했다. 허건 씨를 제외한 대부분은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다. 이들은 “취업난이 심각하고 삶이 팍팍한 요즘, 뭔가 우리 청춘에 의미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건 씨는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겪은 시행착오와 영화제 모습들을 다큐멘터리 ‘불편한 영화제’로 촬영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서 궤도를 잠시 벗어난 시도와 의미 있는 이 ‘딴짓’의 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아무도 안 온 텅 빈 상영장을 찍어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가진 것은 몸뿐인 흔한 ‘흙수저’ 청춘들은 제작비 충당을 위해 ‘크라우드 펀딩’을 했다. 프로젝트를 응원하는 대중에게 자금 지원을 받는 것이다. 한 달도 안 돼 목표 금액 80만 원을 훌쩍 넘었다. 최근에는 ‘불편한 영화제’가 오는 3월 열리는 2018 인디다큐페스티벌 국내신작전 상영작에 선정됐다.

 

인정받은 듯한 느낌이었다. 너희들만의 무모한 도전이 아니라 아직 낭만을 꿈꾸는 많은 청춘들이 공감하는 이야기라고.

△궤도를 벗어나도 괜찮아, ‘헬조선’ 일탈구 되길

 

귀촌을 결정하고서도 고민이 많았던 윤 씨다. 삶의 터전을 옮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남현 씨 등 완주 청년들을 보면서 회사에 입사해 월급을 받지 않아도 다양한 삶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 지방 소도시에서 귀농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윤 씨도 다른 청년들처럼 과 생활도, 대외 활동도, 취업을 위한 영어공부와 자격증 취득도 어느 것 하나 놓칠세라 허덕였다.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헬조선’에서 청년들은 더욱 위축되고 좌절감에 빠졌다.

 

‘너멍굴 영화제’는 처음으로 맛본 성취감이었다. 소중하게 대해준 지역과 지역 사람들이 고마웠다. 영화제는 올해도 이어진다. 규모와 콘셉트는 유지하되 음식 판매, 마켓 운영 등 주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 중이다.

 

완성된 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영화제’를 자체적으로 배급할 상영회도 활발히 열기로 했다. 윤 씨 개인적으로는 올해 완주군에서 만들 청년 거점 공간에 들어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예정이다.

 

“ ‘너멍굴 영화제’가 청년들의 오아시스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경쟁 사회에 젖어 있던 제가 여기서 즐겁다는 감정, 함께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어요. 다른 청년들도 숨통이 좀 트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처럼 살라는 것이 아니지만 다양한 삶의 형태를 보며 시야를 넓히고 힐링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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