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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과 발, 치열한 예술의 흔적

조각·붓칠·연주로 거칠어진 손…/ "그만큼 작업에 몰두했다는 증거"

▲ 전북대 대학원 조소과에 재학중인 최무용(왼쪽), 이루리 씨.

최근 SNS에 자신의 발 사진을 공개한 테니스 선수 정현을 비롯해 강수진 발레리나, 김연아 피겨스케이트 선수 등 운동선수와 예술인들의 손과 발은 공개될 때마다 화제를 모았다. 상처투성이에 울퉁불퉁 변해버린 일부가 때론 치열한 삶 전체를 대변한다. 전북지역 예술인들의 손발에 새겨진 흔적을 통해 이들의 노력과 작업세계를 들여다봤다.

 

△상처도 내 작업의 일부

 

지난 29일 전북대 예술대학 작업실. 겨울방학임에도 학교에 나온 조소과 대학원생인 최무용·이루리(27) 씨가 작업에 쓸 스테인리스를 절단하고 있었다. 스테인리스강, 돌 등 주로 무겁고 단단한 재료를 절단하고 용접하는 조각은 신체의 힘을 많이 필요로 한다. 또 물질이 가진 힘과 성질을 손으로 직접 만져서 다듬고 형상화하기 때문에 조각가들은 ‘손이 빨리 늙는다’고 말한다.

 

“네일아트는 바로 벗겨지거나 끊어져 꿈도 못 꿔요. 손을 조금이라도 꾸미면 바로 ‘작업할 생각 없냐’며 우스갯소리가 날아오죠. 건조한 겨울엔 작업하다가 손을 펴잖아요? 쫙 찢어져서 피가 나요.” 이루리 씨의 말이다.

 

그라인더나 톱, 사포날, 용접기 등을 사용하며 생긴 상처를 여기저기 짚어내는 둘이다. 이들은 “하지만 감수한다. 그만큼 작업에 몰두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조각품과는 또 다른 형태의 예술 결과물이라는 것.

 

“더 단단한 손을 만들고 싶다”는 최무용 씨는 “그만큼 성숙해져 있을 내 작업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오랜 연습의 흔적 ‘굳은살’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단원들은 손에 박인 굳은살은 기본이고 지문이 변형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했다.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박달님(44) 가야금 수석 단원은 왼손 엄지손가락에 패인 줄을 보면 연습을 많이 했는지 안 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박 수석은 ‘고속도로가 생긴다’고 표현했다. 독주회 등 개인 연주회를 앞두면 하루 평균 8시간은 연습에 매진해야 한다. 이런 날에는 그의 말대로 고속도로가 생긴다. 왼손은 줄을 누르고, 오른손은 줄을 뜯는 역할을 한다. 가야금 줄의 장력 때문에 줄이 지나가는 자리는 늘 굳은살이 박여있다.

▲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위은영(거문고) 수석 단원.

거문고는 6현으로 된 악기이지만 유현(거문고의 둘째 줄)과 대현(거문고의 셋째 줄) 두 줄을 가지고 논다. 위은영(50) 거문고 수석 단원도 술대를 잡는 오른손은 휘고, 줄을 누르는 왼손은 굳은살투성이다. 하지만 위 수석은 굳은살이 곧 실력이라는 성급한 결론을 경계했다.

▲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위은영 수석 단원의 거친 손.

“굳은살이 박인 만큼 힘을 빼야 해요. 운지법이 잘못되면 한 달 안에 어깨와 손이 고장 나거든요. 굳은살이 다는 아니에요. 힘이 아닌 호흡으로 소리를 내야 해요. 진짜 고수는 굳은살 없이도 좋은 소리를 냅니다.”

▲ 전북도립국악원 관현악단 조진용(해금) 단원.

해금을 연주하는 조진용(28) 단원은 손가락 끝이 아닌 마디에 박인 굳은살을 보여줬다. 활대를 잡으면서 변형된 지문은 덤이었다. 하지만 그는 육체적인 고통은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보다 머릿속으로 생각한 음정이 해금으로 표현될 때 느끼는 즐거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무감각한 발 통해 자신을 돌아보다

▲ 이주원 작품

자신의 발을 그리는 화가도 있다. 이주원 서양화가의 작품은 인물의 얼굴도 실루엣도 아닌 발이 중심이다. 발의 동작과 힘을 준 세기, 보폭 등은 인물의 상태를 보여주는 자화상과 같다.

 

이주원 화가는 “사람들이 신체 중 잘 관심 두거나 좋아하지 않는 부분이지만, 평소에 타인에게 잘 내보이지 않기에 무방비하게 놓인 발이야말로 자기 자신의 모습을 투영한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어느 날 무감각하게 걷는 내 모습이 마치 내 삶과 닮아보였다”며, “발걸음을 통해 별생각 없이 무심하게 하루를 사는 나를 비롯한 현대인들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대상을 사진처럼 실감 나게 묘사하는 극사실(하이퍼리얼리즘)회화 화풍으로 그린다. 하지만 발은 상처나 주름, 굴곡하나 없는 비현실적으로 이상적인 생김새다. 치열함 없이 무심하게 하루를 소비하는 삶을 매끈한 발로 표현해 오히려 자신을 반성하게 만들려는 의도다. 문민주

김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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