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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주 한국지역문화생태연구소장의 사연 있는 지역이야기] 29. 눈물처럼 지는 꽃, 선운사 동백 - 다시는 불나지 말라 심었지만 붉은 꽃잎 불꽃처럼 '활활'

6m 높이 2000여 그루 동백 병풍처럼 둘러 선운사 호위
정유재란 때 사찰 전소된 후 중건과정 승려들이 심은 듯
완연한 봄에 활짝 피는 春栢 산 아래서 절 수호하듯 군락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 지는 건 잠깐이더군 /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 이더군….’

최영미의 <선운사에서> 란 시의 문장이다. 동백꽃의 소식이 들리기 시작하니 문득 이맘때쯤 선운사(禪雲寺)를 찾아가 발길을 돌렸던 기억이 난다. 추운 겨울 흰 눈 속에서 붉게 피어나는 동백의 모습을 그리며 찾았던 선운사는 동백꽃이 피기 전이었다.

▲ 절 뒤쪽 비스듬한 산 아래 절을 수호하는 모습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운사 동백.
▲ 절 뒤쪽 비스듬한 산 아래 절을 수호하는 모습으로 군락을 이루고 있는 선운사 동백.

 

선운사의 동백은 봄날이 한창일 때 벚꽃과 더불어 핀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찾았을 때는 이미 송이째 떨어져 처연하게 지고 난 후라 그 잠깐의 아름다움을 번번이 놓쳤다. 몇 계절에 이름을 걸어 놓고 피어나는 ‘동백(冬柏)’은 흔히 겨울에 꽃이 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피어나는 시기에 따라 선운사의 동백처럼 봄에 피는 춘백(春栢)도 있고, 가을에 피는 추백(秋栢)도 있다. 오래전 중국에서는 해홍화라고 불리다 지금은 산다화라고 부르며 일본에서는 애기동백을 다매, 유럽에서는 카멜리아라 불리는 등 그 이름이 많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동백으로 불리며 그 아름다움이 문학의 소재가 되고 노래로 불리는 꽃이다.

▲ 동백아가씨 음반 표지.
▲ 동백아가씨 음반 표지.

 

가수 이미자의 대표곡인 동백아가씨는 1964년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영화 <동백아가씨> 의 주제가로 35주간 가요순위 1위를 달렸던 히트곡이다. 그러나 동백아가씨는 인기 절정을 누리던 중 갑자기 왜색풍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는 수난을 겪게 된다. 일제강점기 시절 대중가요의 주류였던 일본 엔카와 비슷한 트로트가 다시 유행되는 것을 염려했다는 것과 동백나무의 주요 자생지가 일본으로 잘못 알려져 금지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동백아가씨는 오랫동안 금지곡이었다가 1987년 6월 항쟁 이후 해금된 노래로 땅에 떨어져 다시 피어나는 동백과도 같은 아픈 사연을 지녔다.

동백에 대한 색다른 오해를 남긴 문학작품도 있다. 김유정의 단편 『동백꽃』으로 산골 마을을 배경으로 풋풋한 사랑을 담은 작품이다.

소설 속에서 동백꽃은 ‘…그 바람에 나의 몸뚱이도 겹쳐져 쓰러지며 한창 피어 흐드러진 노란 동백꽃 속으로 폭 파묻혀버렸다. 알싸한 그리고 향긋한 그 냄새에 나는 땅이 꺼지는 듯이 온 정신이 그만 아찔하였다.’라는 문장 속에 등장한다. 대부분 붉은빛이나 흰색을 띠는 동백꽃과 달리 작품 속에서 노란 동백꽃으로 서술된 꽃은 바로 강원도에서 ‘동백나무’ 혹은 ‘동박나무’로 불려왔던 ‘생강나무 꽃’이다. 이른 봄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생강나무를 입안에 넣고 깨물어 보면 알싸한 향이 나니 작품의 내용과 맞아 떨어진다. 우리가 알던 동백이 아닌 생강나무이다 보니 이런저런 오해를 불러오기도 했다.

붉은 동백꽃이 김유정의 단편집 표지와 관련 자료를 장식했고 김유정 문학관 조성 시 쪽동백나무가 심어졌다가 생강나무로 다시 심었다는 에피소드도 전해진다. 어찌 되었건 동백나무는 유명세만큼이나 사연이 많은 꽃나무이다.

이들 동백 중에는 우리 민족과 운명을 같이하며 슬픈 사연을 지닌 동백도 있다. 울산과 제주의 동백이다. 울산이 원산지인 울산동백은 한 나무에 오색빛깔 여덟 겹으로 피어나는 희귀종으로 학성에 자생하고 있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동백을 발견하고 채집해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쳐지면서 일본에 빼앗긴 꽃이다. 불행히도 학성의 울산동백은 군락지가 소멸되었으나, 이후 1989년 일본의 한 사찰에서 발견되어 반환 운동을 통해 다시 고향인 울산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며, 지금은 울산시청과 울산 중구 학성공원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제주의 아픈 역사인 4·3항쟁의 70주년을 상징하는 꽃도 동백꽃이다. 제주 4·3항쟁 때 토벌을 피해 주민들이 동백동산으로 숨어들었던 그 슬픔이 이젠 역사의 아이콘이 되어 우리의 가슴과 어깨 위에서 붉게 피어나고 있다.

꽃이 아름다운 동백은 그 모습과 다르게 향기가 없는 꽃이다. 게다가 추운 겨울부터 피는 꽃이다 보니 벌과 나비가 아닌 새에 의해 꽃가루가 수정되는 조매화(鳥媒花)로 동백의 이름을 딴 동박새와 공생한다.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일본·중국 등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군락지 중 북단 경계에는 고창 선운사(禪雲寺)의 동백숲이 있는데, 그 가치가 높고 사찰과 아름다운 경관을 이루어 1967년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선운사 동백나무는 정확히는 동백(冬栢)이 아니라 봄기운이 제대로 올라야 활짝 피는 춘백(春栢)이며 절 뒤쪽 비스듬한 산 아래 절을 수호하는 모습으로 군락을 이루어 선운사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다.

▲ 조선고적도보의 선운사.
▲ 조선고적도보의 선운사.

선운사는 신라의 진흥왕이 창건했다는 설과 백제 위덕왕 24년(577년) 때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백제 무왕 무렵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고려말 공민왕 3년(1354년)에 중수되었고, 조선 성종 때에 이르러 십여 년에 걸쳐 건물이 189채나 되도록 중창되면서 1475년 봄에는 선왕선가(先王仙駕)를 위한 수륙재(水陸齊)를 크게 열고 번창하였다. 그러나 정유재란 때인 선조 30년(1597년)에 어실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다. 이후 광해군에 이르러 승려를 위한 선방과 법당을 건립하게 되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고, 당시 사찰의 역사를 기록한 『선운사적』, 『운사고작』 ,『선운사사적』등이 전해져와 선운사의 자세한 창건기록은 물론이고 조선시대의 불교사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로 인정받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55호로 지정되었다.

동백나무 숲은 정확지는 않지만 사찰이 전소된 후 중건과정에서 승려들이 심은 것으로 추정된다. 선운사 대웅전 뒤편 경사진 언덕에 평균 높이는 약 6m이고, 둘레는 30㎝인 동백나무 2000여 그루가 병풍처럼 띠를 둘러 선운사를 호위하듯 조성되어 있다.

아름다운 사찰 경관을 위해 심은 듯하나 선운사에 동백나무 숲을 조성한 이유는 분명하다. 동백나무의 두꺼운 잎이 수분을 많이 머금고 있어 예로부터 방풍림이자 방화림으로 쓰여 화재로부터 사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 한다. 그래서인지 선운사는 정유재란 이후 화재 피해가 없었다. 게다가 열매에서 짠 동백기름은 머릿기름이나 사찰을 밝히는 등불과 부처님전에 바치는 등잔불의 기름으로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조선시대 임신한 왕비의 태교를 위해 쓰인 『태교보감』에는 ‘동백기름이 피부를 탄력 있고 윤택하게 가꾸어주기 때문에 피부에 좋다’고도 나와 있으니 동백나무는 여러모로 선조들에게 사랑받는 나무였던 것 같다. 선운사에 있어 동백숲의 조성은 필요에 의한 이로운 나무의 식재였지만, 선운사와 어우러진 동백숲의 아름다움은 봄날의 감성을 건네주는 지역의 귀한 자산이 되었다.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 바람 불어 설운 날에 말이에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후두둑지는 꽃 말이에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 선운사 동백꽃 숲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 거예요

선운사에 가신 적이 있나요 /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에요

송창식의 노래가 선운사의 동백숲으로 마음을 이끈다. 봄이 한창인 어느 좋은 날 춘백으로 남아있는 선운사에 다시 가볼 참이다. 가서 선운사와 어우러진 동백나무도 보고 눈물처럼 후두두 지어 땅에서 피어난 처연한 꽃송이를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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