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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오송제 입구 '농장' 가보니] 2년전 약속 깨고 또 개·염소 대규모 사육

2016년 주민·동물보호단체 농장주인 설득해 사육 포기…당시 43마리 해외에 입양
조례상 금지, 처벌은 못해…수수방관 행정 질타 목소리

▲ 16일 전주 송천동 오송제 입구에 있는 한 농장에서 식용견들이 녹슨 철창 안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조현욱 수습기자

농장에선 또 다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마을 주민과 동물보호단체가 43마리의 식용견을 구출한 지 2년 만이다.

지난 16일 정오 전주시 송천동 오송제 입구에 자리잡고 있는 한 농장. 그릇에 담긴 음식물 찌꺼기 주변에서 짧은 목줄을 단 개 3마리가 사납게 짖어댔다.

1970년대 구입된 철조망과 뜬장(동물의 배설물을 처리하기 위해 밑면에 구멍을 뚫은 철창)에는 강아지 11마리가 빼곡했다. 쇠창살에 바짝 몸을 붙인 백구가 기자를 노려봤다.

마당을 지나 비닐하우스를 개조해 만든 공간에는 개와 염소 30여 마리가 숨겨져 있었다. 족히 20㎏은 넘어보이는 대형견 8마리는 녹슨 케이지 2곳에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농장 주인의 숙식공간과 창고도 보였다.

1491㎡(451평) 규모의 농장은 상태가 엉망이었다. 뜬장 아래로 오물이 엉겨 붙어있었고, 발이 빠지지 않도록 개들은 계속 균형을 잡고 있어야 했다. 바닥에 방치된 비닐봉지와 플라스틱 세숫대야에는 도축한 잔여물이 담겨 있었다.

농장 주인 이모 씨(65)가 다가오자 개들은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이 씨는 대뜸 화를 냈다. “내가 개를 좋아해 직접 강아지를 사 와서 키우고 있다”며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우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하지만 이 씨는 이곳에서 식용견 농장을 운영할 수 없다. 조례로 금지된 데다 사용 부지도 이 씨의 땅이 아닌, 국방부 소유이기 때문이다.

전주 덕진구청 환경관리팀 관계자는 “ ‘전주시 가축사육 제한에 관한 조례’에 따라 도심 한복판에서 식용견 수 십마리를 키우지 못한다. 처벌조항이 없지만, 이씨를 설득하겠다”고 밝혔다.

국방시설본부 공보담당자도 “이씨가 퇴거 명령에 불응하면, 고발을 비롯해 토지인도소송 및 강제집행에 나서겠다”고 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이 씨는 개 사육을 포기하기로 진즉에 약속했다. 지난 2016년 6월 송천동 주민 안의진 씨(30)와 남지숙 씨(52)가 나서면서다. 안 씨는 당시 반찬까지 만들어 보내고 손녀처럼 살갑게 하며, 그를 설득했다. 같은 해 7월 19일 ‘개를 팔고, 개 사육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 대가로 이 씨는 620만 원을 손에 쥐었다.

하지만 지난해 늦은 여름, 지나가다 개 짖는 소리를 들은 남 씨는 황당했다. 이 씨가 약속을 어기고 식용견을 다시 키우고 있었던 것.

“2년 전, 개 43마리를 미국과 캐나다 등에 입양 보냈어요. 돈을 준 조건으로 각서까지 썼는데, 또 식용견을 키우더라고요. 트럭으로 개를 싣고 오가는 모습을 봤어요. 사료 대신 음식물 찌꺼기를 가져와 개에게 주는데, 날씨가 더우면 불쾌한 냄새가 코를 찔러요.”

2년전 시민이 직접 개들을 구조하고 해외에 입양하면서 해외 언론까지 보도됐지만 이 씨와 수수방관했던 행정은 변한 것이 없었다.

20년 이상 이곳에 머문 것으로 추정되는 이 씨는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을까. 이 씨는 “옛날에 내 땅이었다”며 농장 너머 H아파트를 가리켰다. 이 씨 지인은 “이씨가 당시 토지 보상금을 받았는데, 술과 도박으로 모두 날렸다. 가족 없이 혼자 사는 기초생활수급자 신세가 됐다”고 설명했다.

이 씨는 고철 더미에서 분류작업을 하며 목청을 높였다. “우리 집이니까 이제 그만 나가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남 씨는 “반드시 법과 제도로만 접근할 사안은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살도록 이 농장에 갇힌 이 씨와 개를 함께 구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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