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 같던 식용견 농장을 탈출해 광활한 땅을 뛰노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지난 23일 오후, 전북대학교 수의대학에 마련된 보금자리. 개 10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기자를 반겼다. 지난 22일 전주시 송천동 오송제 인근 개사육 농장에서 구조된 개들이다.
친구 개들이 수시로 끌려나가는, 공포스러웠던 뜬장에 위태롭게 서있던 개들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환한 표정으로 쉴 새 없이 펄펄 뛰어다녔다.
리트리버 종인 개 ‘오송이’는 여기선 엄마로 통한다. 대부분 태어난 지 1년 미만인 개들이라 몸집이 큰 3살 ‘오송이’를 졸졸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한참을 뛰노는데도 지친 기색이라곤 없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사료를 섞은 닭죽이었다. 개들은 ‘게 눈 감추듯’그릇을 비웠다.
개들이 자유를 만끽하기 딱 좋은 곳. 전북대학교 수의학과 임채웅 교수(수의병리학)와 박정희 전북환경운동연합 운영위원, 송천동 주민 남지숙 씨(52)는 “와~” 탄성을 질렀다.
임 교수는 “아침에 개 3마리가 탈출해 깜짝 놀랐는데, 밥 먹을 시간에 맞춰 나타나 더 놀랐다”면서 “좁은 철창에 있다 보니 처음에는 뛰는 게 어색했는데, 지금은 잘 적응을 하고 있다. 다들 건강한 상태”라고 환하게 웃었다.
이번 개 구조는 생명을 존중하는 이들의 노력과 행정이 함께 해 이뤄졌다. 지난 22일 전주시청 공무원과 농장에 갔다는 박 위원은 “사재를 털어 주인 이 모씨(65)가 키운 개 10마리를 50만 원에 샀다”고 설명했다.
이미 이 씨는 성견 12마리를 식당에 팔아넘겼고, 몸집이 작은 나머지 10마리만 간신히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들은 보호소를 거쳐 조만간 해외로 입양된다. 국내에서는 대형견이나 잡종견을 입양하려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25일 경기도 김포시 동물보호단체 ‘세이브코리안독스’가 운영하는 보호소에 도착한 개들은 조만간 비행기를 타고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으로 향한다. 지난 2016년 7월에도 이 농장 개 43마리가 해외로 입양되기도 했다. 당시 입양 개들의 상태는 수시로 입양기관에 보고되고 있는데, 모두 건강하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주시도 소매를 걷어붙였다. 식용견 구조의 악순환, 송천동 오송제 인근 국방부 소유의 땅에 있는 사육 시설도 곧 철거되고, 이 씨에 대한 각종 사회복지 혜택을 알아보고 있다.
양영규 전주시 친환경농업과 동물복지팀장은 “빠른 시간 안에 이씨 농장에 있는 뜬장과 케이지 등을 철거할 예정인데, 함께 있던 염소도 처분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곡절 많은 이 씨에 대한 도움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행정은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홀몸노인인 이 씨의 이사와 직업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로 했다.
전주시 송천동 주민자치센터 관계자는 “이 씨를 대상으로 LH 긴급 임대지원이 가능하다”며 “이씨의 상태에 따라 일자리 등도 도와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젠, 개를 키우지 않기로 약속한 이 씨의 결정만 남았다. 그는 “이제 개를 키우지 않겠다. 송천동에서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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