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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워지고 싶다면 비워라

비우고 낮추면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것

▲ 황인철 원불교 화산교당 주임교무

원불교가 세상에 드러나기 전, 소태산대종사가 교단 창립을 준비하던 곳인 변산에 와서 봄기운에 끌리듯 나는 천천히 한 바퀴를 둘러본다.

‘능가산내소사’ 현판이 걸려있는 일주문을 지나니 길이 살짝 굽어있다. 일주문 밖에서는 도무지 내소사를 짐작할 수 없다. 굽은 길에 들어서서야 전나무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상으로 600여 미터 길게 이어진 길이 보인다.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춘분을 지나 봄기운 완연한 바람이 전나무 숲을 지나 코끝을 간질이고, 왼편으로는 계곡물소리가 귀를 맑게 한다. 그 전나무 터널을 지나면 금강교가 나오고, 전나무에 비해 키가 작은 벚꽃길이 환하게 이어진다. 춘분에 내린 눈 속에서 꽃눈이 툭툭 불거지고 있다. 천왕이 눈을 부릅뜨고 삿된 마음을 잡아내는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시원한 마당을 지나면 2층 누각인 봉래루가 눈앞을 가린다.

봉래루는 자연석 주춧돌(덤벙주초)의 울퉁불퉁한 모양대로 나무기둥의 아랫부분을 도려내어 음양의 각을 맞춤으로써 집의 무게를 감당하게 한 그랭이법으로 세웠다. 이렇게 오목하고 볼록한 것을 맞추니 이질적인 돌과 나무가 서로 하나가 된다. 조상들의 자연에 순응하는 지혜와 미적 감각에 다시 한 번 감탄한다. 맞배지붕을 올린 2층 누각, 그 봉래루의 마루 밑을 지나서 만나는 자연석 계단은 속세에서 선경으로 오르는 길을 보여주는 것인가.

계단 위에 오르니, 천년을 살아낸 느티나무가 위용을 드러내고, 3층 석탑 너머로 날아갈 듯한 팔작지붕의 대웅보전 그늘 속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이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의 협시를 받으며 인자하게 중생을 맞이한다. 대웅보전 뒤로는 관음봉 바위능선이 병풍처럼 둘러 서있다. 변산 내소사 풍경이다.

봉래루를 자세하게 묘사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예전에는 봉래루를 지나려면 기둥의 높이가 낮아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그런데 이제는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지날 수 있게 되었다. 어떻게 개축을 했는지는 지난날의 모습을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으나 주춧돌이 볼썽사납게 드러나 있다.

10여 년 전, 함께한 일행들에게 덤벙주초와 그랭이법에 대한 조상의 지혜를 설명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나그네가 한마디 했었다.

“맞는 말씀인데, 봉래루는 이제 의미가 없어졌어요.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지날 수 있게 됐거든요.” 부처님 앞에 서려면 먼저 자신을 낮추는 자세부터 가르치려한 조상의 지혜를, 고개를 숙이지 않고도 편안하게 봉래루 아래를 지나갈 수 있도록 오직 편의성 위주로 개조해 버리고 말았다는 이야기였다.

재백이고개 넘어 직소폭포와 봉래구곡의 물을 품은 저수지 분옥담은 깊이를 알 수 없이 푸르다. 만 골짜기 천 봉우리의 가느다란 빗물을 받아들이는 저수지는 스스로를 낮추어 품을 열고 있다. 그리고 다 차면 무넘이로 흘려보낸다. 저수지가 높은 곳에서 벽을 쌓고 있다면 물은 흘러 들어갈 수 없는 법.

지식이 가득 찬 제자의 작은 찻잔이 넘침에도 불구하고 계속 차를 따르는 스승의 모습은 아만심과 욕심에 차있는 우리들에게 비워야 거듭날 수 있다는 진리를 새삼 깨우쳐 주고 있다. 비우고 낮추면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자칫 공적이 있으면 알아주기를 바라고, 작은 지식과 재주에 경박해지기 쉬우며, 말 잘하면 실행이 부족할 수 있다. 앎이 많을수록 신중하고, 재주 있을수록 노력해야 하며, 말 잘하면 실행에 더욱 힘쓰고, 공성신퇴(功成身退)해야 함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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