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뭍,양 쪽 생태계 넘나들며
도전·변화 통해 3억여년 생존
최근 환경파괴 멸종위기 처해
기적의 계절이다. 세상은 봄에 다시 태어난다. 겨우내 죽은 것처럼 보이던 가지에도 물이 오르고 꽃이 터지기 시작한다. 꽃소식은 섬진강 줄기를 타고 북상한다. 하동의 매화가 피기 시작하면 곧이어 구례 산수유 축제가 열리고, 데미샘 발원지가 있는 진안의 고로쇠 농가들의 손길도 부산해진다.
이제 곧 섬진강 19번 국도를 따라 벚꽃들이 흐드러지면 봄맞이에 한껏 들뜬 나들이객들의 발걸음도 절정에 오른다. 비록 새해의 첫 날을 따로 정해두었다지만, 사람들은 한겨울 아랫목을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비가 적시고 남녘에서 녹아드는 바람에 몇 차례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고서야 우리의 몸과 마음은 비로소 추위에서 풀려난다. 경칩이 벌써 한 달 전.
어디선가 익숙한 소리가 들려온다.
‘개굴 개굴’
△봄의 전령사, 개구리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절기다. 환경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육모정이 있는 남원 지리산 구룡계곡 북방산 개구리들이 3월 초에 첫 산란을 시작했다고 한다. 섬진강 줄기로 이어진 하동과 구례에서는 이미 2월 중하순부터 알이 관찰되었다. 작년보다 20여일이나 늦은 산란이라고 하니 지난 겨울이 유난히 추웠던 모양이다. 흔히 ‘산개구리’ 또는 ‘뽕악이’라고도 불리는 이들은 계절을 알리는 전령사들이다. 봄은 꽃보다 먼저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우리 곁에 찾아든다. 예전 같으면 개구쟁이 시절 추억을 찾아 동네 개울의 돌 밑을 더투기라도 할 법한데 요즘 날엔 꿈도 못 꿀 일이다. 뱀과 개구리의 상당수가 이미 포획금지종으로 지정된 탓이다. 포획만 아니라 먹는 것조차도 처벌을 받을 수 있다. 현행 야생동식물보호법은 식용으로 양식해서 유통되는 경우만을 예외로 두고 있다. 멸종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개체수가 감소했다는 조사결과에 따른 것이다. 산골 아이들의 허기를 달래거나 노인들의 심심풀이를 넘긴 지나친 보신문화가 가져온 남획의 결과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기억이 되고 말았다.
잠시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로부터 벗어나보면 양서류와 인간과의 오랜 인연은 보은과 애틋함으로 그득하다. 밑 빠진 독에 물을 채워야 했던 콩쥐를 계모의 심술로부터 구해주었던 두꺼비는 강줄기를 따라 쳐들어오던 왜구들을 물리치도록 돕기도 했다. 섬진강(蟾津江)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얻어졌다. 개구리 왕눈이와 아로미, 투투가 살던 무지개 연못을 좋아했던 선생님은 캐로로 전사들의 우주무용담을 보고 자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액침표본병에 담긴 개구리를 들어 보이며 변온동물인 개구리는 해부를 해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하는 과학 선생님의 설명을 아이들은 영문 몰라 할 수 있다. 대신 손안에 놓인 개구리를 마녀의 마법에 걸린 왕자님이 혹시 아닐까 하는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입맛보다는 아직 아이들의 동화 같은 상상 속에서 양서류들은 훨씬 더 친근한 존재로 살아 있다.
△개구리 올챙이적 시절
그런데 ‘변신’이라는 키워드로 이들의 생태를 읽어보면, 개구리를 포함한 양서류(兩棲類)의 삶은 경이롭다. 우선 ‘양쪽에서 서식한다’는 그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물과 뭍을 오가며 판이하게 다른 생태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이들은 독특한 진화를 선택했다. 알에서 깨어난 올챙이들은 수중호흡을 할 수 있는 아가미를 가졌다. 그리고 얼마쯤 지나면 뒷다리가 생기고, 앞다리도 자라나면서 꼬리가 퇴화되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호흡기관 역시도 육상에서 공기호흡을 할 수 있는 허파를 갖춘다. 그렇지만 그 기능이 충분하지 못해 대부분이 피부호흡을 병행하며 의존도가 높다.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도 물이 있는 서식지를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식성 또한 변하는데, 올챙이 시절에는 주로 녹조류와 작은 물벌레들을 먹는 잡식성이지만 성체가 되면 적극적인 육식을 한다. 이웃해서 살아가는 잠자리와의 관계를 두고 보면 개구리들의 인생은 갑을의 역전 드라마 같다. 딱히 방어수단이 없는 올챙이들은 잠자리 유충들의 단골 먹잇감이지만, 일단 성체로 자란 잠자리들에게 개구리들의 날렵한 혀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서로에게 위험하면서도 또한 서로 없이는 못 사는 기막힌 애증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한 발 물러서서 보면 생태계는 이런 방식으로 전체의 조화와 균형을 맞춰간다.
이른 봄부터 초여름까지 이어지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는 잠을 설치게 하는 골칫거리다. 특히 개구리들의 서식지였던 방죽을 매립해서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로 입주한 주민들이 피해자다. 그런데 막상 그들의 포접 과정을 훔쳐보게 되면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 간의 치열한 경쟁과 절박함에 놀랄 수밖에 없다.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어렵게 암컷의 등을 차지한 수컷은 암컷의 앞다리 뒤쪽, 겨드랑이 안쪽을 생식혹이 달린 앞발가락으로 힘껏 조여 잡는다. 간혹 포접과 산란과정에서 암컷들이 죽는 불상사도 생긴다. ‘콜링(Calling)’이라 불리는 개구리들의 울음소리는 턱밑이나 양볼을 부풀려서 내는데, 주로 수컷이 암컷을 부르는 소리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소리는 어두운 밤에도 먹잇감을 찾는 너구리같은 천적들도 함께 불러들인다. 목숨을 걸고 우는 것이다. 절박하면서도 애절하다. 아마도 개구리들의 울음이 이웃 주민들의 밤을 더욱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이유인 듯 싶다.
변신의 극치는 개구리들의 겨울잠이다. 밤의 온도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10월 즈음이면 먹이가 되는 곤충들도 하나 둘씩 사라져 먹고 살기가 어려워진다. 더 큰 문제는 촉촉한 피부를 유지해야 피부호흡을 할 수 있는데, 물이 얼어버리는 겨울에는 숨쉬기조차 힘들어진다. 짧지 않은 겨울나기를 위한 마지막 변신을 시도한다. 땅속으로 들어가 가사상태로 겨울을 난다. 주변 온도에 따라 체온을 낮추고 에너지 소비를 극도로 줄이려고 심장 박동조차 거의 멈추어 둔다. 겨울 노지에서 살아남는 시금치나 고로쇠처럼 혈액 내 당분 농도를 끌어올려 몸이 얼지 않도록 만든다. 비록 살아 있어도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고 그렇다고 죽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의 겨울잠이다. 개구리들은 새봄이 오면 다시 살아날 것을 믿기 때문에 죽음 같은 잠 속에 기꺼이 빠져든다.
△궁즉변(窮則變), 변즉통(變則通), 통즉구(通則久)
흔히 ‘궁하면 통한다’는 말의 기원은 주역(周易)의 한 구절에서 나왔다. 변화와 소통 그래야 오래도록 지속가능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 말이다. 재작년 겨울과 지난 해 봄을 되돌아보면, 깊은 생각의 싹을 틔우는 씨앗 같다. 대한민국의 새 봄은 만년설처럼 결코 녹을 것 같지 않던 권위의 토대를 단번에 무너뜨리고 있다. 대지의 민낯이 봄볕에 드러나면서 숨 죽여 왔던 씨앗들이 꿈틀거리고 있다. 변화는 늘 진통과 불편을 동반해왔다. 그렇게 무너지고, 그렇게 새로워지면서 세상이 바뀌어왔다. 그런데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생각하지만, 정작 스스로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라던 톨스토이의 말마따나 나에게 되묻는다. 겨울을 지겨워하면서도 막상 봄을 맞을 준비는 제대로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잊지 말자. 하찮은 존재 같아 보이지만, 꽃보다 먼저 봄을 불러 오던 주역이 누구였던가를. 그들이 왜 물에서 뭍으로 올라왔는지, 추위를 견디기 위해 왜 극단적인 변신을 해마다 되풀이 하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도전과 변화를 통해 3억5천만년이나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현실에서 돌아 본 양서류들의 운명은 무척 위태로워 보인다. 남획뿐만 아니라 서식지 파괴로 인한 멸종 위기, 더불어 지구온난화 때문에 전문가들까지 나서서 개체 수 조사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변신의 귀재인 개구리들이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개구리들이 빼앗긴 땅에도 봄은 찾아올까.
● 4월 28일은 '개구리 보전의 날'
올해로 벌써 10년째, 4월의 마지막 주 토요일은 ‘개구리 보전의 날’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SAVE THE FROGS!’라는 비영리단체가 주관하는 행사다. 취지는 시민들의 참여와 작은 실천을 통해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놓인 양서류들의 보전과 인류와 야생동물이 공존하는 더 나은 지구를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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