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일본을 충격에 빠뜨리며 떠들썩하게 했던 책 한 권이 있다. 2040년이면 일본의 절반, 896개 지방자치단체가 소멸할 것이라고 예측한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 이다. 국내는 또 어떤가. 마강래 중앙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지방도시 살생부> 라는 저서를 통해 2040년엔 전국 지자체 중 30%는 인구감소로 사실상 도시기능을 상실한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2016년 한국고용정보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228개 시·군·구 기초단체 중 85곳이 소멸위험 수준에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의성군, 고흥군은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면 향후 30년 내 사라질 위험이 가장 높은 지자체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도시> 지방소멸>
이쯤 되니 내가 몸담고 있는 완주군은 어디쯤 서 있나 궁금해진다. 다행히 완주군은 전라북도 14개 시군 중 군 단위 지자체로는 유일하게 위험군이 아닌 주의단계에 포함돼 있다. 농촌에 기반을 둔 도·농 복합지역으로는 드물게 꾸준히 증가해 온 인구지표가 긍정적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해본다. 더불어 지난 수년간 완주군이 집중해온 귀농·귀촌지원, 마을공동체활성화, 생활문화확산 등의 정책과 사업들이 조용히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며 맺어온 작은 결실들 덕분이지 않을까 싶다.
최근엔 지방소멸을 연착륙시키기 위한 다양한 지원책들이 지역창생, 지역재생이라는 이름으로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들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각기 다른 배경과 목표를 외치고 있지만 결국 ‘사람이 답이고, 지역재생은 곧 지역공동체를 회복하는 것’으로 모아지는 것 같다. 우리가 완주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완주의 가장 큰 자산은 지난 10여 년간 축적해온 공동체의 역량이다. 2008년부터 시작한 공동체사업은 2015년 기준 마을공동체 61곳과 지역공동체 45곳을 발굴·육성했고, 20여 명의 마을사무장을 배출해냈다. 그리고 그 축적된 역량이 토양이 되어 지난해 ‘문화이장’이라는 완주형 민간 거버넌스가 첫걸음을 뗐다.
전주의 4배, 서울의 약 1.4배에 달하는 완주의 넓은 땅덩어리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자산을 안겨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정책과 사업이 군민 한 명 한 명, 마을 구석구석 스며들기 어려운 지리적 한계 또한 숙제로 남겼다. 아무리 좋은 정책과 사업이 있은 들, 알려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반대로 군민들에게는 가까이에서 그들의 문화적 수요를 들어주고 일상 속에서 문화생활을 향유할 수 있도록 돕는 안내자가 필요했다. 완주문화재단은 그런 현장의 니즈를 발견하고 그 수요에 가장 적합한 해답을 고민했으며 그 결과 발족한 것이 ‘문화이장’이다. 지난해 11개 읍·면, 13명의 문화이장으로 시작해 올해는 13개 읍·면, 26명으로 확대됐다. 참가자들의 나이도, 살아온 이야기도, 현재 업으로 삼고 있는 일들도 제각각이다. 20대부터 60대까지, 청년 미디어 스타트업 창업가부터 귀촌 5년 차의 전업주부, 귀농·귀촌멘토, 문화해설사, 만경강 지킴이, 색소폰 연주가 등 완주가 제2의 고향이 된 이주민과 평생을 완주군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까지 다양한 층위의 군민들로 구성돼있다.
문화이장의 주요한 활동은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수요와 생활밀착형 문화정책 의제를 발굴하기 위한 문화반상회를 개최하고 예술가와 함께 미적 체험 및 문화적 역량을 키우는 예술워크숍 참여, 그리고 축제·공연·전시·마을 소식 등 완주군 내 문화 소식을 전달하고 공유하는 문화예술통신사로서 활동하는 것이다. 지난해 7월 활동을 시작한 문화이장은 총 46회의 문화반상회와 6차에 걸친 예술워크숍을 진행했으며, 완주문화재단 페어플레이 주민평가단, 지원사업 선정위원, 문화포럼 발제, 기록자, 예술인실태 조사원 등 재단 사업 전반에 전방위적으로 참여했다. 문화이장이 사업의 수혜자로서뿐 아니라 숙의와 토론과 연대, 협치의 책임 있는 문화 거버넌스로 성장하고 참여할 수 있는 개방적 구조가 완주문화재단 내에 구축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지방소멸이 과장된 공포이고 예측이었다는 주장들도 있다. 공감을 얻기도,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지나친 비관도 근거 없는 낙관도 위험한 일이겠으나, 얼마 전 매우 즐겁게 읽었던 책의 서문에 쓰인 첫 문장을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할까 한다.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미래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행복동네 후쿠이 리포트라는 부제가 붙은 ‘이토록 멋진 마을’이라는 제목의 책이다. 결국은 사람이고 지역공동체의 회복이 다가올 미래를 변화시킬 가장 강력한 동력이자 희망이 아닐까 싶다. 완주군에는 약 529개의 자연유래마을이 있다. 지금은 26명의 문화이장이 26곳의 마을을 찾고 싶고 머무르고 싶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 씨앗들은 매년 싹을 틔울 것이고 머지않은 미래에 529개의 마을에는 529명의 문화이장이 ‘이토록 멋진 마을’을 위해 뿌린 결실들을 수확하는 날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 김옥자 구이면 문화이장 "선주민-이주민 잇는 가교 되고파"
2009년 오랜 전원생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완주군 구이면 하학마을로 들어올 때 마을 어르신들에게 ‘동네에 해가 되지 않게 살겠습니다’라고 약속했다.
어르신들은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요’라고 화답해주셨고 그 말씀은 이웃들의 따뜻한 배려로 현실이 되었다. 어느덧 귀향 10년 차를 맞는 완주군민으로 도시에서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새벽 산책과 구이저수지 둑길의 물안개며, 미술관 뒤편 벚꽃 터널 길들을 내 것인양 마음껏 호사를 누리고 있다.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싶은 개인의 바람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자연스러운 매개로서 예술을 마을에서 펼쳐보고 싶었던 희망이 합해져 완주문화재단 문화이장 문을 두드렸다.
운 좋게 문화이장으로 활동하게 되었고 어느 멋진 가을날, 작은 뜨락음악회를 열어보기도 하고, 완주군 예술인 현황조사의 마을 조사원으로 참여해 우리 지역에 어떤 예술인들이 거주하고 있는지 들여다보는 기회도 얻게 됐다.
‘찾아가는 예술산타’ 프로그램도 유치해 완주에 이주한 노부부만을 위한 맞춤형 판소리 공연도 선사했다. 올해로 문화이장 2년째를 맞는다.
구이면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자산들로 귀향해오는 이주민들이 많다. 문화로 선주민과 이주민을 따뜻하게 보듬고 마음을 잇는 가교 구실을 열심히 해나가겠다.
● 전별 봉동읍 문화이장 "동네가 희망이다…사람이 답이다!"
봉동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미디어제작과 관련해 지난해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문화이장을 하기 전에는 완주의 문화예술 현황에 대해 전혀 몰랐다. 문화이장님들의 문화반상회와 활동들을 영상으로 기록하기 위해 찾아다니면서 비로소 완주군 곳곳에서 펼쳐지는 많은 문화행사와 묵묵히 헌신하고 열정을 쏟는 문화현장의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해 문화이장으로 활동하며 예술농부의 영상기록자로도 참여하고, 지역문화전문인력 우수 수강생으로 선정돼 홍콩 해외연수를 다녀오는 행운도 누렸다.
지역민을 직접 찾아가는 ‘완주문화포럼 생강’의 봉동편을 협력해 진행하며 주민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와 지역에 대한 애착심을 느낀 건 큰 수확이었다.
문제도 해결도 답은 현장과 사람에 있다는 것을 글이 아닌 마음으로 깨달았다고 할까. 올해도 나의 카메라는 소소하지만 소중한 이웃들의 일상을 담아내고 기록하기 위해 더 낮은 곳으로 향할 것 같다.
왜냐고?
동네가 희망이고, 역시 사람에게 답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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