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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전] 여자는 '대지'다

▲ 이성자 작품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1월 4, 90’

“나는 여자이고, 여자는 어머니이고, 어머니는 대지다.”

이렇게 자신과 여자에 대한 정체성을 말한 사람은 이성자(李聖子, 1918~2009) 화백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이성자 화백의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전이 오는 7월 29일까지 열리고 있다. 회화 및 판화 127점과 드로잉과 포스터 등이 포함된 아카이브를 전시하는 회고전이다. 이성자는 1918년 경남 진주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짓센여자대학을 졸업한 신여성이었다. 이성자는 의사와 결혼, 세 아들을 두었으나 1950년 결혼생활에 파경을 맞이한다. 프랑스어를 배운 뒤 1951년 아들 셋을 남겨두고 훌쩍 프랑스로 떠난다. 파리 그랑드 슈미에르 아카데미에서 회화를 배우기 시작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스승인 앙리 고에츠의 영향을 받아 추상화에 매료돼 추상작업을 하게 된다. 몇 년 후 그녀는 스승의 영향력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신만의 독특한 추상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1960년대 만리 타국에서 그녀는 어머니와 세 아들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과 향수를 형상화한 작품 ‘내가 아는 어머니’로 프랑스 화단에서 주목을 받게 된다. ‘자신의 동양적인 유산에서 나온 오묘한 성격을 간직하고 서양미술의 흐름 속에 용기 있게 합류한 동양의 예술가’라는 평과 함께 ‘동녘의 대사’라는 별칭도 얻게 된다.

한국적 사상과 정서가 긷든 그녀의 추상화는 프랑스 화단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작품에는 음과 양, 동양과 서양, 기계와 자연, 죽음과 생명, 자연과 인공, 정신과 물질 등 대립적인 요소들이 ‘조화와 상생’의 철학이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형식이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고, 내용이 없는 형식은 공허하다’는 칸트의 철학처럼 그녀는 예술가의 작품에는 반드시 내용, 즉 철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일생 그렇게 작품 활동을 했다. 그 후 그녀는 추상화 외에도 판화, 도자기 작업으로 영역을 넓혀갔다.

이번 전시는 네 개의 주제로 나뉘어 구성됐다. ‘조형 탐색기’(1950년대)는 파리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추상작업을 처음 시도했던 시기. ‘여성과 대지’(1960년대)는 자신의 여성성과 모성을 대지로 표현했다. ‘음과 양’(1970년대)은 미국 여행 후 대도시의 고층 건물과 문명의 물질적 풍요를 경험한 그녀는 대립된 요소를 통합하려는 시도를 도모한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1980년대)은 한국과 프랑스를 수십 번 오가며 비행기 안에서 내려다 본 극지의 오로라를 비롯한 자연과 우주를 심플하게 형상화했다. 반원 모양의 색동 띠들이 모든 것을 초월한 듯, 달관한 듯, 춤을 추고 있는 듯이 보이는 뛰어난 수작이다.

1950년 전쟁의 포화 속에서 이혼한 후 여인보다는 여자로서, 어머니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프랑스로 떠난 것은 시대를 앞 선 신여성다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이혼이 흔치 않은 시절이었으나 좌절하지 않고 외국으로 공부하러 간 용기는 놀랍기만 하다. 그곳에서 자신만의 예술세계와 끊임없는 변화를 열정적으로 추구, 풍성하고 아름다운 열매를 거둔 이성자 화백은 지금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위 어디쯤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을까.

서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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