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이상 바둑 프로기사 시니어 아마추어 유단자 등 노인들의 지혜 적극 활용을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VVIP라 할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손으로 꼽자면 무척 많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 65세 이상 인구가 14%를 초과하면서 ‘고령사회’로 진입한 한국에서 새롭게 주목을 끌고 있는 격대교육(隔代敎育·grandparenting) 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이들은 격대교육의 효과가 잘 드러난 사례라고 한다. 격대교육은 ‘조부모가 손자를 교육하는 것’을 일컫는다.
클린턴의 경우 출생 직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서 유복자로 태어났다. 때문에 홀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나서는 바람에 외조부모에 의해 양육됐다. 시골에서 가게를 운영하던 외조부모는 클린턴을 정성껏 돌보았는데 외할아버지는 피부색에 관계없이 흑인들에게도 외상거래를 해주는 등 개방된 분이었다.
클린턴은 훗날 “난 이를 보면서 ‘평등’과 ‘인권’에 대해 깨우쳤고, 이후 새아버지가 알코올 중독증세로 폭력을 일삼았지만 사랑으로 감싸는 외조부모의 덕에 오늘날의 내가 있을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오바마는 백인인 어머니가 아프리카 출신 생부와 이혼하는 바람에 역시 외조부모에 맡겨져 길러졌다. 제2차대전 참전 용사였던 외조부로부터 역사와 미국 중산층의 언어를 정확히 익힐 수 있었고, 근면과 교육을 강조한 외조부모의 자극에 힘입어 열심히 노력한 끝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될 수 있었다.
이들 경우 외에도 수 십년에 걸쳐 특정집단을 추적조사하는 이른바 ‘종단연구(longitudinal study)’로도 격대교육의 효과는 입증된 바 있다. 미국 하와이주의 카우아이섬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그 한 예다.
이 조사를 주도한 미국 심리학자 에이미 워너에 따르면 1955년 이 섬의 신생아 833명을 대상으로 40년을 추적조사한 결과 고아나 범죄자의 자녀 등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 자란 소위 ‘고위험군’ 200여명 가운데에서 놀랍게도 35%가 장학생을 차지하는 등 모범적으로 성장했다.
워너는 이러한 예외가 왜 생겼는지를 심층 분석한 뒤 ‘이들이 유아기에 조부모 등으로부터 헌신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고 자란 덕에 긍정적 사고를 가지게 됐고, 이 결과 역경에 처해도 선순환으로 극복하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 높아졌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한국사회에서 700만 명이 넘는 노인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큰 현안이 됐다. 특히 칠순이 넘어도 정정한 어르신들이 대부분인데서 알 수 있듯이 신체연령까지 늘어나는 추세에 걸 맞는 ‘인적자원의 효과적 활용’은 국가적 어젠다로 대두됐다.
요즘 대다수 은퇴자들은 비록 ‘뒷방 노인네’ 신세가 됐지만 아직도 사회활동에 지장이 없기 때문에 무언가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싶어한다.
이를 위한 대책으로 노인들의 지혜를 격대교육에 활용하는 방안을 정부차원에서 강구했으면 한다. 구체적으로는 이들을 문화사각지대인 격오지의 멘토, 즉 ‘독서 지도사’나 ‘바둑사범’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특히 날로 퇴보하고 있는 한국바둑의 진흥을 위해 사실상 은퇴상태인 50세 이상 시니어 프로기사 100여 명과 1만여 명이 넘는 시니어 아마추어 유단자를 적극 활용하면 유소년의 정서함양과 논리력 증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게다가 바둑진흥을 위한 국가의 책무 등을 골자로 한 ‘바둑진흥법’의 제정을 계기로 한국기원과 여성가족부, 대한노인회 등이 머리를 맞대면 바둑진흥과 바둑고수 노인층의 활용 등 일거양득의 좋은 방안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노인 한사람이 죽는 것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버리는 것과 같다’고 했다. 가정의 달을 맞아 우리가 되새겨야할 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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