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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와 국가보훈

6월 호국보훈의 달 맞아 국가유공자 감사 전하는 의미있는 행사 많았으면

▲ 심덕섭 국가보훈처 차장

프랑스 조각가 로댕의 ‘칼레의 시민’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러나 작품의 소재가 된 칼레의 시민 일화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사건은 14세기 영국과 프랑스 간의 백년전쟁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프랑스 북부의 항구도시 칼레는 도버해협을 사이에 두고 영국 본토와 마주보고 있었기 때문에 칼레를 차지하는 것이 프랑스군과 영국군 양쪽 모두에게 매우 첨예한 문제였다. 오랜기간 치열한 전쟁을 거쳐 1347년 영국왕 에드워드 3세가 이끄는 군대는 마침내 칼레시를 점령했고, 1년여에 걸쳐 영국군에 저항했던 칼레의 시민들은 모두 몰살 당할 위기에 놓였다.

이때 영국왕은 칼레시의 지도자급 인사 여섯명을 자신에게 넘기면 나머지 사람들은 살려주겠다는 뜻을 전한다. 이에 피에르라는 부자가 먼저 자청하고 이어 고위관료와 변호사 등 상류층 인사 여섯 명이 교수형을 각오하고 스스로 목에 밧줄을 감고 성문의 열쇠를 가지고 에드워드 앞으로 나아간다.

이 사건은 오늘날 사회의 상류층이 공동체에 지는 도덕적 책무를 가리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전형적인 예로 인용되고 있다. 다행히 임신 중인 태아에게 해가 될 것을 우려한 왕비의 간청으로 영국왕은 이들의 목숨을 살려주었다고 하지만, 이들 시민대표들의 공동체를 위한 희생·헌신 정신은 공동체 정신의 유지와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역사적으로도 국가를 위해 전사를 했거나 부상을 당한 군인들에 대한 존경과 보상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다.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정치지도자 페리클레스가 행한 ‘전사자 추모연설’은 전사자에 대한 존경과 추모 그리고 유가족에 대한 약속을 그 내용으로 담고 있다. 이런 것이 없다면, 국가가 비슷한 위기에 다시 처할 때 그 어느 누가 국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자 하겠는가? 국가를 위한 희생에는 국가차원의 보훈·보상이 반드시 따른다는 일종의 신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며 이러한 사회적 합의는 근대국가의 등장과 함께 보훈의 당위성에 대한 근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도 반드시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에 대한 보훈의 역사는 짧지 않다. 한국전쟁시의 전몰군경 유족과 부상자에 대한 지원으로부터 시작되어 1961년에는 군사원호청(軍事援護廳)을 설립하여 이들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지원하게 된다.

그러나 ‘원호’라는 일본식 용어에서 보여지듯이 생계지원의 의미가 강하던 시절이었다. 마침내 1985년에 군사원호청을 국가보훈처로 개편하면서 명예와 존경을 강조하는 ‘보훈’개념이 적용되고 국가유공자를 본격적으로 예우하기 시작한다.

국가유공자의 범위도 점진적으로 확대되어 현재는 광복회, 상이군경회, 4·19민주혁명회 등 14개의 보훈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이분들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되는데, 국가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희생·헌신하신 분들(호국)과 과거 일제로부터 국가를 되찾기 위해 희생되신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독립), 또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신 4·19, 5·18 민주화 유공자(민주)를 말한다.

정부는 국가유공자들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고 이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기 위하여 매년 6월 한달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하여 다채로운 기념식과 행사를 실시한다. 현충일과 6·25를 기념하면서 국가의 중요성을 느끼고 더 나아가 나라사랑 정신을 고취하기 위함이다.

56회를 맞이하는 금년에는 남북간 그리고 북미간 관계발전을 기원하는 차원에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추모와 감사’를 넘어 ‘평화와 번영’으로 보답하자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담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지역에서도 국가유공자들에게 따뜻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이분들을 위한 의미 있는 행사가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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