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발자취는 고스란히 그의 이름에 남아있기 마련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사람은 평생 살다간 삶의 궤적을 이름에 새긴다. 하여 이 세상의 부모들은 자식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과 성을 다해 좋은 이름을 짓는다.
그런데 살다보면 뭐가 맘대로 잘 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사람은 살던 터를 옮겨보고, 명당을 찾아 조상의 묘를 이전하는가 하면, 때로는 자신의 이름을 바꾸기도 한다. 소위 개명(改名)에 나선다. 이름을 고친다는 것은 대부분 지금까지와는 다른 삶을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표적인 경우다. 젊은 시절 그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세번이나 낙선하고 첫 부인과 사별까지 하는 아픔을 겪게되는데 우연인지 몰라도 이름을 바꾸면서 팔자가 바뀐다. ‘김대중(金大仲)’이라고 이름 끝자를 ‘버금 중’으로 썼다가 1960년 초, 지금의 ‘金大中’으로 이름을 바꿔 강원도 인제 보궐선거에서 처음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이희호 여사를 새 아내로 맞으면서 대통령까지 된다. 한 성명철학자가 “金大仲은 中자에 人(사람 인)이 들어가 세로로 볼때 좌우 동형(同形)을 깼기 때문에 人자를 떼야 한다”고 해서 개명했다고 한다.
안응칠에서 안중근으로, 김창수는 김구로, 김봉남은 앙드레 김으로 개명하면서 훗날 크게 이름을 떨치게 된다.
혁명가인 러시아의 레닌이나 베트남의 호찌민 등은 쫓기는 신세여서 수십, 수백개의 가명이 있었는데 역사에 남긴 이름은 역시 본명이 아니다.
집안 어른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개명이 쉬워지면서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개명 열풍이 불고 있다고 한다.
개명하는게 어디 사람뿐이랴. 주한미군을 지휘하는 미국 태평양사령부의 명칭이 최근 ‘인도태평양사령부’로 공식 변경됐는데 이는 거대 경제권 구상인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전략을 추진중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의미다.
그런가하면 한국의 정당사는 한마디로 작명의 역사라고 할만하다. 이번 선거에 나온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 민주평화당, 정의당 등 얼핏봐도 15개나 된다. 좋은 이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정당이나 후보의 가치관과 실행력이다. 그리고 후보가 살아온 삶의 궤적이다. /위병기 문화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