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잠, 낮달, 낮술, 낮거리…. 모두 ‘낮’으로 시작되는 말이다. 저녁이나 밤과 차별화시키려고 덧댄 말이다. 숫처녀, 숫총각처럼…. 낮잠, 낮달, 낮술 모두 어렵지 않다. 그럼 ‘낮거리’는? 이 말의 뜻이 궁금하면 짬이 생기는 대로 각자 알아서 스마트폰을 노크해 볼 일이다. 그중 하나, 누가 뭐래도 술은 ‘낮술’이라는 술꾼이 적지 않다. 그건 아마 새참과 함께 내온 농주(農酒)에서 비롯되었지 싶다. 꼭두새벽부터 들일을 하느라 고단해진 몸을 시원한 막걸리 한두 사발로 풀어냈던 게 일부 술꾼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낮술’의 시초였으리라.
낮술은 해가 떨어지기 전에 끝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주장하는 술꾼이 의외로 많다. 초저녁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는 이들도 있다. 낮에 마시는 술이라고 모두 낮술일까. ‘술시’의 술과 달리 낮술은 낯가림이 좀 심하다. 때와 장소와 주종을 퍽도 가린다. 하늘이 천장 높이로 낮게 내려앉아야 한다. 천둥·번개가 야단법석을 떨면서 굵은 빗줄기를 퍼부어대는 날은 낮술에 오히려 적합하지 않다. 아침부터, 혹은 점심 무렵부터 가랑비든 이슬비든 보슬비가 거리를 초작초작 적시는 날이어야 낮술로 제격이다.
그런 날 열일 작파하고 시장골목으로 은근슬쩍 발걸음이 가는 데서 낮술은 시작된다. 재래식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 후덕해 보이는 주인아주머니가 즉석에서 부쳐내는 해물파전에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손등으로 입가를 닦을 줄 알아야 한다. 세상 돌아가는 꼬락서니 따위는 잠시 접어두어야 한다. 왁자하게 떠들지도 말 일이다. 정겨운 이와 마주 앉아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를 나눠 밟으며 조용히 술잔을 비울 줄 알아야 한다. 그러다 얼굴이 불콰해질 무렵까지도 빗줄기가 허공을 긋고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리하여 창유리를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시련의 아픔을 달래는 여인의 눈물처럼 애잔해 보여야 낮술은 비로소 온몸에 젖어 드는 법이다. ‘낮술 환영’이라고 적어 붙인 ‘쥔장’의 보이지 않는 손길이 정겹다.
우석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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