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전주를 다녀왔다. 모처럼 동행한 지인을 비롯 고향 친구들과 저녁도 먹고 한옥스테이를 하는 호사까지 누렸다. 어릴 적 쏘다니던 교동 일대는 한옥마을 조성 이후 한국 최고의 핫플레이스라는 찬사가 과찬이 아님을 보여주듯 잘 단장돼 있었다. 국적 불명의 상업시설들이 눈에 거슬리기는 했으나 과거의 골목길이 말끔히 정비된 데다 전통미로 단장한 상점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전주에서도 잘 알려진 모 한정식 집에서의 저녁은 젬병이었다. 가격도 비싼 데다 음식의 질과 서비스도 엉망이었다. 서울에서 내려갈 때부터 ‘맛과 멋의 고향 전주음식’에 한껏 기대가 부풀었던 일행들은 “전주 음식이 왜 이 모양이냐”며 타박을 했다. 서울 친구들의 불평에 난 얼굴이 화끈거릴 수밖에 없었다. 이 집의 찬은 내가 어릴 적 먹었던 그리운 그 맛, 약간은 곰삭은 듯 하면서도 은은한 향이 어우러진 그런 메뉴는 아니었다. 예를 들면 토하젓, 새우탕, 굴젓, 콩자반, 묵 생채, 명태무침, 콩나물국, 모래무지 탕(이름만 들어도 침이 돈다), 인삼한과, 어포조림, 열구자탕, 약밥, 가오리찜, 고추튀김, 잡채, 깻잎, 구절판 등 말이다. 대신 칠레산 홍어에 중국산 김치를 곁들인 삼합, 외국산 소고기 불고기, 짜기만 한 된장국 등이 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전주 음식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옥마을이 뜬 후 전주여행을 다녀온 서울 친구들로부터 “전주 음식에 실망했다”는 푸념을 들어온 지가 꽤 됐다. 특히 고향 친구 가운데 광주지역 기관장을 하고 온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전주한정식은 광주에 비하면 질과 양에서 비교가 안 된다”며 목청을 돋웠다.
물론 아직도 전주는 비빔밥과 콩나물국밥, 그리고 가성비에 관한한 최고라 할 막걸리집과 요즘 새롭게 뜬 ‘가맥집’ 등 음식에 관한 한 내세울 게 많긴 하다. 또한 수구정을 비롯해 전주한정식의 체면을 지키려는 전통 맛집들이 남아있긴 하다. 하지만 평균 차원에서 이제 감히 ‘전주한정식’이란 타이틀을 붙여주기엔 어림도 없는 집들이 일반화한 게 현실이다.
전북지방은 예로부터 드넓은 호남평야와 풍부한 해산물을 품고 있는 서해와 갯벌, 그리고 동부의 산악지대가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어 식재료가 다양하고 풍부했다. 이에 따라 사대부와 지방 아전을 중심으로 격조 있고 풍성한 반상 차림을 특징으로 하는 특유의 남도 한정식이 식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배경에서 ‘식재전주(食在全州)’라는 말도 나왔다. 또한 전주에는 ‘사불여(四不如)’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관리는 아전만 못하고, 아전은 기생만 못하고, 기생은 소리만 못하고, 소리는 음식만 못하다(官不如史, 史不如妓, 妓不如音, 音不如食)’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그만큼 전주인들의 음식 자부심은 대단했다.
일찍이 가람 이병기 선생은 ‘전주 8미’라고 하여 이 지역 특산물인 콩나물, 열무, 녹두묵, 미나리, 애호박, 모자, 민물 게 등을 높이 쳤다. 이런 다양한 제철 재료에 정성스런 손맛이 어우러져야만 격조와 품위의 전주한정식이 가능했던 것이다.
전주가 한옥마을로 다시 비상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요즘 외지인들은 일제 강점기의 건축문화가 잔존해 있는 군산과 새만금 방조제를 거쳐 전주 한옥마을을 돌아보는 코스를 최고의 남도 여행으로 꼽는다. 그러나 국적불명의 꼬치집과 스낵집, 커피가게 등이 대세를 이뤄 정체성을 상실해가고 있는 한옥마을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외화내빈으로 치닫고 있는 전주는 멋과 맛과 풍류의 본향으로 거듭나야만 한다. 새 전주시장이 맨 먼저 챙겨야 할 업무는 ‘전주 바로세우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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