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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바꿔주는 책을 믿지 마세요

독자들의 인생을 강제로 바꾸려는 책은 읽지말아야

▲ 김신철 독립서점 북스포즈 공동대표
▲ 김신철 독립서점 북스포즈 공동대표

고백하겠다. 학생 때 가장 싫어하는 공간은 서점이었다. 당시 서점에는 온통 ‘명령하는 책’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잘팔리는 책의 제목은 꼭 ‘미쳐라’로 끝이났다. 공부에 미쳐라. 여행에 미쳐라. 재테크에 미쳐라. 1년만 미쳐라. 100일만 미쳐라. 하루만 미쳐라. 이런책을 보다 보니 조용한 서점에서 환청이 들렸다. 아무래도 뇌가 미쳤나 보다.

아시다시피 청년의 자존감이 바닥을 치는 시대다. 반대로 잘 나가는 책의 성량은 더욱 커지고 다양해졌다. ‘A처럼 일해라, B처럼 공부해라, C처럼 놀아라’식으로 롤모델을 붙여주더니 용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멘토나 셀럽이 직접 등장해서 외친다. ‘하고 싶은 대로해라,하고싶은 대로 말하라’. 요즘에는 ‘괜찮다, 네 잘못이 아니니 괜찮다’라는 위로가 되었고 이제는 정말 끝물인 것인지 ‘퇴사해라, 퇴사하고, 퇴사해라’란다. 제발 그만해라.

우리는 ‘자기계발서를 혐오하면서 동시에 자기계발서를 신봉하는’세대다. 당장 저런 책이 싫다고 밝힌 나조차 다른 이들의 시험후기, 합격후기, 취업후기를 읽으며 위로와 힘을 얻었다. 그렇다. 나는 자기계발은 싫지만 동기부여, 자아성형, 멘탈방어를 말하는 텍스트를 쫓고 있었다. 하는 말이야 똑같았다. 미쳐라. 누구처럼.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실패해도 괜찮다. 퇴사해라.

송민수 작가의 <도대체 내가 뭘 읽은 거지?> 라는 책도 이런 물음에서 나왔다. 저자는 자기계발서만 100여 권을 읽었을 정도로 충성도 높은 독자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허탈함을 느꼈고, 시중의 자기계발서를 유형별로 구분하고 좋은 점과 위험한 점을 구분한다. 한 가지 흠이라면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책인데, 자기계발서처럼 이야기를 풀어낸다. 아마도 진성 자기계발서 덕후였기에 이럴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독자에게 ‘미쳐라’라고 말하지 않는 이상 자기계발서는 제법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만 너무 과도하게 읽힌다는 것이 문제다. 마치 젊은이들이 취업문을 넘지 못하는 이유가 ‘개인’의 역량을 깨우지 못했기 때문으로 굳혀지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너무 높아진 문턱을 일단 고치는 것이 먼저다. 그렇지 않다면 외국어부터 각종 자격증까지 온갖 능력을 다 갖춘 다음에 문턱을 넘어와 엑셀에 숫자를 채우는 일을 반복할 것이다.

나는 책이 읽히길 바라는 사람이지만, ‘독자의 인생을 강제로 바꾸려고 하는 책’이 있다면 책장을 덮기를 원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세대는 이런 책들 사이에 자신의 자존심과 자아를 책갈피처럼 꽂는 일이 많다.

그럴 바에는 정신승리를 하는 게 낫다. 적어도 내가 지드래곤보다 나은 점은 있겠지. 내가 글씨는 더 잘 쓰지 않을까? 밥은 내가 더 복스럽게 먹겠지? 적어도 나무젓가락은 내가 더 잘 쪼개겠지…. 아무래도 상대를 잘못 골랐다 싶으면 그냥 다른 사람임을 인정하고 비교를 그만두면 된다. 내 위치를 인정하고 마음 편하게 내가 갈 길을 가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월드컵을 지켜보는 관중이 된 기분을 느낀다. 하지만 정작 관중석에 있는 것은 책이고 경기를 뛰는 것은 당신이다. 책은 그냥 이것저것 당신이 잘 뛰라고 응원과 훈수를 외치는것이다. 그 와중에 훌륭한 책은 관중석에서 뛰쳐나와 패스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골을 넣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당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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