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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128) 7장 전쟁 ④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김춘추는 입을 다물었고 의자의 말이 이어졌다.

 

“그 전(前)에는 왜에도 가서 원군을 요청했다. 그래서 왜에서는 걸사(乞使)가 왔다고 비웃지 않았느냐?”

 

의자가 김춘추를 노려보았다.

 

“네 용기는 가상하나 믿을만한 위인은 아니다. 너는 오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신라를 멸망에서 구해내고 왕이 되려는 욕심뿐이다.”

 

쓴웃음을 지은 의자의 말이 이어졌다.

 

“교묘한 말재주와 임기응변으로 지금까지 버티어 왔겠지만, 오늘로 네 목을 베어 욕망을 끝내주마. 신라와의 합병을 너에게 맡길 수는 없겠다.”

 

이제 김춘추는 머리를 숙인 채 말을 잃었고 의자가 말을 맺는다.

 

“일국(一國)의 왕이 되겠다면 제아무리 소국(小國)이라고 해도 신의를 바탕으로 덕을 보여야 하는 법, 너는 세치 혀만으로 지금까지 잘도 버티어 왔구나.”

 

그리고는 의자가 협보에게 말했다.

 

“청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목을 베어라. 그리고 그 머리를 상자에 담아 편지와 함께 여왕한테 돌려보내라.”

 

“예, 대왕.”

 

협보의 대답이 끝났을 때 김춘추가 번쩍 머리를 들었다.

 

“대왕, 살려주십시오!”

 

김춘추의 얼굴을 본 계백이 숨을 들이켰다. 김춘추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김춘추가 울부짖듯이 말했다.

 

“제가 신라 진골 왕족의 가계표와 조직도를 갖고 있습니다. 비담파와 저한테 우호적인 왕족의 도표가 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신라군의 배치도와 병력, 그리고 성(成)의 위치, 허실까지 모두 기록한 자료도 있습니다.”

 

“…….”

 

“만일에 대비해서 품고 다녔던 자료인데 대왕께 바치지요. 신라의 기밀자료를 다 드리는 셈입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김춘추가 부르짖었다.

 

“대왕, 목숨만 살려주십시오. 그 서류는 제 자식 인문의 몸에 감아 놓았으니 지금 당장 보실 수가 있습니다!”

 

의자가 성충과 흥수, 계백까지 시선을 마주쳤다. 넷의 표정은 모두 다르다. 의자는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얼굴이 되어 있는가 하면 성충은 토할 것 같은 표정이다. 흥수는 아예 눈을 감고 있는 것이 만감이 교차하는 것 같다. 계백만이 김춘추를 쏘아보고 있었는데 마악 칼을 내려칠 것 같은 분위기다. 그때 의자가 협보에게 말했다.

 

“이놈 아들을 데려와라.”

 

잠시 후에 청 안에 김인문이 앉아있다. 겁에 질린 김인문은 옷이 벗겨지고 가슴에 감아놓은 헝겊이 풀려 서류가 나올 때까지 몸을 떨기만 했다. 협보가 서류를 바치자 의자와 성충, 흥수, 계백까지 차례로 읽는다. 서류는 여러 장이었고 김춘추의 말대로 다 적혀 있었다. 이윽고 머리를 든 의자가 협보에게 말했다.

 

“저 부자(父子)를 마당으로 데려가서 기다려라.”

 

협보가 김춘추 옆으로 다가가 목덜미를 잡아 일으켰다.

 

“대왕, 살려주십시오.”

 

김춘추가 겨우 그렇게 말하더니 김인문과 함께 끌려나갔다. 잠시 청 안에 정적이 덮여졌고 흥수는 아직도 눈을 뜨지 않았다. 그때 의자가 말했다.

 

“그래, 저놈이 신라왕이 될 수도 있겠지.”

 

의자의 목소리가 청을 울렸다.

 

“비담이 왕이 되는 것보다 저런 놈이 왕위를 잇는 것이 낫겠다.”

 

계백은 길게 숨을 뱉었다. 이것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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