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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 탈출, 문화체험] ① 필사 -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는 즐거움…잡생각 싹~ 우울증도 이겨냈어요"

시원한 실내서 즐기기 딱…자투리 시간 활용 장점
정적이지만 삶에 활력
소설 혼불 필사하는 이들 “언어의 기적 깨우쳤다”

▲ 전북교육청과 최명희문학관이 마련한 소설 '혼불' 필사 프로그램 ‘사각사각 디딤돌’에 참여한 시민들. 필사 참여자가 '혼불' 소설책을 펴놓고 원고지에 한 단어, 한 문장씩 옮겨 적고 있다. 참여자들은 '혼불' 1권을 필사하는 데에 평균 60시간, 200자 원고지 1117장, 펜 9자루를 썼다. /사진=김보현 기자
▲ 전북교육청과 최명희문학관이 마련한 소설 '혼불' 필사 프로그램 ‘사각사각 디딤돌’에 참여한 시민들. 필사 참여자가 '혼불' 소설책을 펴놓고 원고지에 한 단어, 한 문장씩 옮겨 적고 있다. 참여자들은 '혼불' 1권을 필사하는 데에 평균 60시간, 200자 원고지 1117장, 펜 9자루를 썼다. /사진=김보현 기자

 예년보다 일찍 물러난 장마에 연일 불볕더위다. 얼굴은 불그죽죽, 몸은 축 늘어진다. 하지만 더위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 폭염과 열대야는 한 달 이상 이어질 예정.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즐기자. 이 여름, 무더위를 피할 수 있는 문화 활동을 6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사나흘 주기로 울리는 폭염특보·야생진드기 안내 문자에 에어컨 앞이 유일한 안식처인 요즘이다. 시원하게 부는 바람 곁에서, 사각사각 연필심 소리를 내보는 것은 어떨까. 필사(筆寫). 실내에서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고, 정적이지만 활력은 큰 문화 활동이다. 독서보다 접근하기 쉽고 우리 말씨의 매력은 더 깊게 다가온다.

사진제공=최명희문학관
사진제공=최명희문학관

 김미숙, 김은주, 최경아, 이경미 씨 등 시민 30여 명은 지난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전주 최명희문학관에서 소설 <혼불> 을 필사하고 있다.

필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했던 사람이 대부분인데 벌써 4개월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북교육청과 최명희문학관이 마련한 프로그램으로, 매주 목요일 소설 <혼불> 에 대한 강연을 듣고 함께 필사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분량을 채웠다.

일반적으로 소설이나 시 등을 베껴 쓰는 필사는 눈으로 읽었을 때 놓치기 쉬운 좋은 글귀나 고운 우리말을 되새길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일반적인 독서에 비해 부담이 될 수도 있지만 제대로만 한다면 저자의 의도, 감성 등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필사를 ‘질적 독서’라고 일컫는 이유다.

사진제공=최명희문학관
사진제공=최명희문학관

 특히 최명희의 소설 <혼불> 은 질박한 사투리와 순수한 우리말을 아름답게 녹여 전라도의 언어와 역사, 문화를 살필 수 있다. 방정임(56) 씨는 “ <혼불> 필사를 하면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많은 미사여구를 배웠다”며 “언어의 기적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필사는 정적인 활동인 것 같지만 삶의 활력이 된다.

“가만히 있어도 지치는 여름, 명상하듯 필사를 하면 마음이 꽉 채워지는 충만함을 느낍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써가는 즐거움은 시름을 잊게 할 정도예요. 더운 날 땀 흘려 몸을 쓰지 않아도 성취감이 큰 문화 활동이어서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어요.”(박정미·51)

일부 참여자는 활력을 넘어 치유의 효과도 얻었다. 김미숙(54) 씨는 “필사를 하면서 갱년기 우울증을 물리쳤다”며 “글자를 옮겨 쓰는 일을 반복하면서 잡생각이 사라지고 머리가 맑아졌다”고 말했다.

우울증을 이겨냈다거나 집에서 필사하면 대화거리가 생겨 가족 간의 관계도 돈독해졌다는 참여자도 많았다. 최근 울산에서 전주로 옮겨 온 전선경 (43)씨는 낯선 새 터전에서 위로가 되는 든든한 친구를 얻었다.

사진제공=최명희문학관
사진제공=최명희문학관

 자투리 시간을 틈틈이 활용해 즐기는 것도 필사의 큰 장점이다. TV를 보거나 스마트폰을 하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적지 않은데, 이 시간을 모아 결과물을 낼 수 있다. 또 모여서 함께 하면 포기하지 않도록 힘이 되지만 혼자서도 쉽게 시작할 수 있어 인기가 있다. 지난해부터 필사 책이 베스트셀러 안에 꾸준히 들고 있으니 말이다.

최기우 최명희문학관 학예연구실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볼 것을 추천한다”면서 “한 글자 한 글자 마음에 닿는 단어와 문장을 쓰다 보면 펜과 종이의 세계, 글쓰기에 대한 욕심도 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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