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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노래

태극전사가 부르는 애국가
고교동창들이 부르는 교가
또 하나의 감동을 안겨줘

▲ 민경중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총장

기상관측 이래 사상 최대의 폭염이 지구촌을 강타하고 있다. 올 여름 초입에 그래도 내게 더위를 가장 잊게 해준 일이 있었다. 바로 2018러시아 월드컵이다. 우리나라가 비록 마지막 경기에서 독일을 이겨주는 대이변을 연출했음에도 일찍 예선 탈락해주는 바람에 온전하게 다른 나라들의 수준 높은 경기를 마음 편하게 즐길 수 있었다.

이번에 내가 가장 주목했던 팀은 크로아티아였다. 유럽 최악의 빈국이자 인구 416만명에 불과한 크로아티아가 3번의 연장 승부로 결승까지 진출하는 과정은 드라마틱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결승에서 프랑스에 패했지만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각국 팬들의 찬사를 받았다.

내심 프랑스를 응원한 팬들보다는 크로아티아를 심정적으로 응원한 사람들이 많지 않았을까? 인구와 경제대국인 미국과 중국은 아예 참가조차도 못하고 약소국이 강대국을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월드컵 말고 또 있을까? 자국의 참가 여부와 관계없이 ‘축구공은 둥글다’라는 명제를 새기며 열광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축구중계를 지켜보며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언제일까? 물론 짜릿한 결승 골과 마지막 승리를 확정하는 휘슬을 불 때가 당연히 감동이 크겠지만 난 경기 시작 전 선수들이 부르는 국가(國歌)를 들을 때다. 심장이 뛰고 감동이 물밀 듯 밀려온다. 노래에는 묘한 마력이 있다. 없던 힘도 솟아나게 하고 힘든 일도 잊게 한다. 패배의 순간을 환희의 승리로 바꾸기도 한다. 그래서 고대로부터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들을 위한 출정가는 오늘날 국가로 바뀐 경우가 많다. 이민자들로 구성된 다양한 인종의 프랑스 선수들이 한 목소리로 부르는 ‘라마르세예즈(La Marse illaise)’도 프랑스대혁명 당시의 출정가다. ‘일어서라 조국의 젊은이들 영광의 날은 왔다’의 가사처럼 프랑스는 결승전에서 대단합의 힘을 보여줬다.

크로아티아의 국가인 ‘우리의 아름다운 조국’은 ‘그대여 당신은 우리의 유일한 영광, 조국이여 당신이 있는 곳에 들판 있고 산이 있네, 도나우 강이여 힘을 잃지 말아라’라고 강조한다. 치열한 유럽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처절함이 담겨있다. 태극 전사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가슴에 손을 얹고 부르는 애국가는 비장하고 때로는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든다. 내게 국가만큼 또 하나의 감동을 안겨주는 노래가 있다. 바로 고등학교 교가(校歌)다. 세월이 흐르고 반백이 되어도 부를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노래가 바로 교가다.

얼마 전 전주에서 고등학교 졸업 35주년 행사가 있었다. 600여 명의 친구 중 100여 명이 모였다. 이날 행사 마지막은 늘 그랬던 것처럼 교가였다. ‘노령의 푸른 줄기 기린봉 솟아 전주천 맑은 물도 굽이 도는 곳, 내 나라 내 겨레의 뻗어 가는 길 이 목숨 다하도록 이어갈 우리…’ 마치 고교시절로 돌아간 듯 우리는 교가로 하나가 되었다.

80년 엄혹했던 전두환 군사정권과 광주항쟁이 있던 그해 고교생활을 시작한 우리 세대에게 교가는 큰 의미가 있었다. 서울로 올라와 교가 사랑은 더욱 커졌다. 대학 캠퍼스에 경찰들이 상주하던 살벌했던 때도 동문회 후 마지막은 교정에서 목청껏 부르는 교가였다. 기자 생활을 하며 고교동문 언론인 수 십명이 모여 회식을 한 후에도 광화문에서, 강남 사거리 한복판에서 교가로 대미를 장식했다.

칠레 출신의 소설가 이사벨 아옌데는 “심장이 우리를 움직이며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라고 말했었다.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교가를 그래서 나는 애국가 만큼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친구들과 함께 운명이 다하는 그 날까지 교가를 부르고 싶다.

△ 민경중 사무총장은 CBS베이징 특파원·보도국장, 한국외대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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