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의원의 죽음이 몰고 온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 장례기간에 전국적으로 10만여 명의 추모객이 빈소를 찾았다. 추모제에도 수천 명의 인파가 몰려 그를 기렸다. 진보진영은 물론 보수정당 소속 의원들도 그의 죽음을 추모했다. 정치인의 죽음에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이처럼 정서적 공감대가 일치한 것은 보기 드문 일이다.
그를 보내면서 국민들 사이에선 그가 남긴 유지를 어떤 식으로든 되살려야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너무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는 정치자금법을 개정해서 정치인을 정치자금의 굴레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 의원이 드루킹 일당으로부터 돈을 받은 때는 20대 총선 한 달 전쯤이다. 노 의원이 삼성 떡값 검사들의 실명을 공개한 여파로 의원직을 상실한 상태, 즉 일반인 신분으로 선거를 준비하던 시점이다. 때문에 그는 당시 1년 내내 정치후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현역과는 달리 예비후보 등록을 마쳐야만 정치후원금을 모을 수 있는 처지였다.
그는 당연히 자금난에 시달렸을 터이고, 그의 고백대로 ‘비합법적 절차’로 돈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정치신인들에게 상대적으로 불리한데다 현역의원들에게도 너무 가혹한 현행 정치자금법을 현실적으로 고치자는 견해는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가 몸을 던지면서까지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과연 ‘정치자금법의 유연화’만이었을까?
그가 몸을 던지기 전의 일련의 행보를 꼼꼼히 더듬어보면 그것만은 아닌 것같다. 내가 보기엔 그보다는 오히려 국민의 눈높이에 비해 터무니없이 공고한 국회의원의 특권을 벗어던져야한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국회 기록에 따르면 노 의원은 17대 국회 때 47개, 19대 때 15개, 20대 때 57개의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그가 발의한 법안을 살펴보면 그가 꿈꾸던 세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그는 2004년 9월14일 “자녀의 성과 본을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성과 본만 따르도록 한 것은 어머니의 권리가 차별받는다”며 이를 개정하자는 ‘민법개정안’을 처음 대표발의한 이래 국가보안법 폐지법, 대체복무제를 인정하자는 병역법 개정안 등 주로 소수자 권익과 보편적 인권을 보장하자는 법안을 내놓았다.
노 의원이 생전 마지막으로 발의한 법안은 ‘국회의원 특수활동비 폐지’를 담은 국회법 일부 개정법률안이다. 7월5일 발의된 이 개정안은 국회의장이 예산을 편성할 때 특수활동비 예산을 편성할 수 없도록 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이에 앞서 ‘평화와 정의의 모임’ 원내대표를 맡으면서 한 달에 수 천만 원이 담긴 현금을 특수활동비 조로 지급받자 “양심상 도저히 못 받겠다”며 세달 치를 자진반납하기도 했다. 노 의원은 특활비를 반납하면서 “최근 대법원은 특활비 내역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는데 이는 국회에 특활비 존재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단”이라며 “동일한 이유에서 정의당은 특활비 폐지를 당론으로 주장해 왔다”고 말했다. 나는 바로 이 점을 주목하고 싶다. 그는 생을 마감하는 마지막 행적으로 국회 특활비 폐지를 필두로 한 국회의원의 특권 타파를 주장하고 싶지 않았을까?
그는 정치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최근 들어 줄곧 특활비 폐지를 주장해왔다. 특히 원내대표단과 함께 미국출장을 다녀온 직후 그가 생을 마감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이는 여야 원내대표단간의 합의를 통해 특활비 폐지를 성사시키라는 무언의 시위가 아니었을까? 국민들은 함께 미국을 다녀온 원내대표단의 행보를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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